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는 적선이 아닌 대출로 빈곤 탈출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제도를 창안한 실천적 경제학자다. ‘빈민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신용(credit)은 가난한 사람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라고 주장한다.
유누스 박사는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방글라데시 그래민은행을 설립해 현재 총재를 맡고 있다. 유누스 박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을 모르고 자랐지만, 치타공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3년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자연재해로 힘없이 죽어가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서구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에 회의가 생겨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시골마을 주민 42명에게 27달러를 무담보로 빌려준 것이 마이크로 크레디트 제도의 출발이 됐다. ‘적선은 의타심만 키운다’는 신념에 따라 신용대출 방식을 택했다.
유누스 박사는 3년 뒤 자신이 직접 대학 인근 은행에서 1만 타카(약 240달러)를 빌려 ‘그래민(Grameenㆍ마을이라는 뜻) 프로젝트’라는 소액대출 실험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 같은 그의 행동을 비웃었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 그는 79년까지 500가구를 절대빈곤에서 구해냈다. 이에 고무된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83년 그래민은행을 정식 법인으로 발족시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150달러 내외의 소액 종자돈을 무담보로 빌려주는 그래민은행은 2006년 현재 2,185개 지점에, 1만8,151명의 직원을 거느린 초대형 은행으로 발전했다. 무모한 실험이라던 당초 우려와 달리 대출금을 대부분 예금으로 충당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재정자립도 100%의 흑자경영을 실현했다. 대출받아 자립에 성공한 사람들이 다시 저축을 통해 다른 빈민들을 돕는 방식이다. 그래민은행에서 대출 받은 600만 명 중 무려 58%가 자신의 삶을 바꿔 가난에서 벗어났다.
이 제도는 빈곤퇴치 외에 여성 인권을 신장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었다. 대출자의 96%가 여성으로, 대출 받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의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유누스 박사가 창안한 무담보 소액대출운동이 큰 성공을 거두자 세계 각국이 앞 다퉈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등 37개국에서 9,200만명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97년 미국 워싱턴에서는 139개국 2,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이크로 크레디트 정상회의가 열렸고, 유엔은 2005년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그는 빈곤 퇴치의 공을 인정 받아 84년 막사이사이상, 94년 세계식량상, 98년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이 선정한 ‘지난 25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의 경제인’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제8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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