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도 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장발장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장발장의 세상에 대한 분노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출소자를 냉대하는 사회제도 탓에 어려움을 겪던 장발장에게 미리엘 신부는 따듯한 저녁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 말하는 자와 침묵하는 자
저녁식탁에서 사용했던 은제 그릇을 훔쳐 달아난 장발장이 경찰의 의심을 받아 잡혀 왔을 때, 미리엘 신부는 오히려 은촛대는 왜 가져가질 않았는가라고 말하며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혼란에 빠진 장발장에게 그는 "잊지 마세요. 당신이 선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내가 준 물건들을 쓰기로 약속한 것을…"라고 말한다. 이 말이 장발장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 하나가 등장한다. 아이히만은 나치스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행정실무자로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었다. 독일 패전과 더불어 아르헨티나로 도망했다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납치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다.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독일 개신교 목사인 그뤼버 감독은 독일인으로는 유일하게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재판에 임했다. 그는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아이히만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고, 또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아이히만의 변호사는 반대심문을 통해 그뤼버 감독에게 "목사로서 당신은 아이히만의 감정에 호소하고 그에게 설교하고 그에게 그의 행위가 비도덕적이라고 말해 보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뤼버 감독은 "행동이 말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말해봤자 쓸데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뤼버 감독의 말에 대해 아렌트는, 말하는 것 자체가 행동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목사의 임무는 말의 쓸모를 시험해 보는 것이 아닌가? 라는 뼈아픈 지적을 하였다.
하긴 말하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장발장은 생각이 살아 있는 자였고, 아이히만은 생각이 죽어있는 자였다. 생각의 없음, 무사유는 판단의 상실을 초래하고 결국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조금도 반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란 600만 유대인의 학살이었다.
● 해야 할 말은 해야
우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듣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말해봐야 쓸데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상대의 기억 속에 말을 던져 놓아야 한다. 선한 말은 언젠가는 거기서 작용할 것이다. 듣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생각을 해야 한다.
불편한 감정은 스스로 견디며, 자신을 불편하게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적이 내게는 친구보다 더 도움이 된다. 적은 나를 비난하는 가운데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까."라는 철혈수상 비스마르크의 말이 이 맥락에서 도움이 된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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