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집 청소를 하다가 엉뚱한 길로 샐 때가 있다. 집안은 어질러진 채 잊어버리고 잡다한 회상에 빠져들게 하는 것들…. 내 잡동사니로 가득한 서랍을 청소하다가 꼭 옛 일기장에 빠져든다. 아쉽고, 그립고, 더 많은 꿈이 있던 때의 내 고백을 다시 읽는다. 몇 시간이고 그렇게…,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고 과거에 있곤 한다.
동아도 그랬다. 공부방 청소한다고 들어가더니, 한참 지나도록 꼼짝 소리도 없다. “뭐해?” 삐죽 들여다보고 아는 척하자 그리운 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엄마, 정말 금강굴까지 올라간 아이는 나밖에 없었어?”
“엄마가 중앙선 넘었을 때, 그때 비 막 오던 날, 우리 진짜 죽을 뻔했지?”
“1학년 때, 머리 자르기 싫었는데, 엄마가 안 자르면 평생 할머니집에서 자라 그래서 자른 거 맞아? 내가 그걸 참고 넘어갔을까?”
무릎 아래에 옛날 자기 일기장이랑 공책들을 잔뜩 펼쳐놓고 있다. 어쩌랴, 동아 또한 이미 추억할 것들이 쌓여버린 사람인데.
추억거리, 엄마가 남겨 줄 수도 있다. “어린이들은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읽는 동안이나 읽고 난 후,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는 이를 어떤 모양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한다.”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책을 읽은 아이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표현을 한다. 그 예로 아이는 자라는 동안 낙서 같은 기록들을 마구 ‘배설’해댄다. 광고 전단지 이면에, 엄마의 수첩 끝장에, 색종이 한쪽에….
아이의 기록이 낱장으로 돌아다니다가 쓰레기로 버려지게 하지 말고 잘 모아주자. 진지하게, 책처럼 묶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기록을 남기겠다는 엄마의 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아이에게 ‘기록’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아이가 남긴 것을, 저도 모르게 흘린 기록들을 챙겨주는 것뿐이다.
‘프리스쿨’의 교육철학은 말한다. “우리가 유기체에 관한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 기막힌 복잡성을 더 잘 알게 된다. 성장과 발달로 달려가기 위해 바퀴들이 얼마나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또 그 성장과 발달이 얼마나 놀랍도록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깨닫게 된다. 누군가 또는 어떤 사건이 이 자연스런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강요하지 않은 가운데 자기가 남긴 기록이 훗날 아이에게 추억을 준다. 자기에 대한 그리운 성장기록이기도 하다. 때때로 들춰보면서 갖는 그 뿌듯한 느낌은 스스로 기록을 챙길 수 있게 될 때까지 책읽기가 현재진행형이 되도록 도울 거라 믿는다.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어린이도서관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관장 김소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