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에서 모두 비판하는 걸 보니 우리 개정안이 중립적으로 잘 된 것 같네." 법무부 회사법 개정작업을 이끈 원로학자가 재계와 시민단체의 질타를 접하고 살며시 토로한 한 마디다. 1962년 제정 이후 가장 넓은 범위에 걸친 이번 개정에 대해서 사회구성원의 의견이 전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번 개정에 참여한 나로서도 일부 다른 의견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서 보도하는 재계와 시민단체의 비판 중에는 다소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재계에서는 황금주나 복수의결권주식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은 막아놓은 상태에서 이중대표소송이나 회사기회규정과 같이 경영진에 부담스런 제도를 도입한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 방어의 길을 무제한 터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기업 현실상 경영권 방어를 어느 범위에서 어떤 방법으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무르익은 것 같지 않다.
법률의 테두리를 넘어 종합적 고려가 절실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각계의 논의를 좀더 지켜본 후에 신중하게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것이다.
이중대표소송이나 회사기회규정에 대한 재계의 반응에서는 다소 불손한 표현을 쓰자면 다분히 '엄살'적 요소가 느껴진다. 주주대표소송은 도입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10건도 제기되지 않았다. 보다 제한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이중대표소송이 과연 얼마나 많이 활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영자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부당하게 유용하는 행위를 금하는 규정은 기존 상법의 해석으로도 충분히 도출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선언적인 의미가 더 큰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거래가 조금은 더 곤란해질 것이다. 경영자가 그러한 변화에 부담을 느낀다면 거꾸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한번 반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답답한 것은 투자자 이익을 충분히 보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여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하는 재계 일각의 단견이다.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실 개정안을 찬찬히 뜯어보면 주식과 사채의 다양화, 재무관련 조항의 유연화 등 회사경영의 기동성을 높이기 위한 규정들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경영자의 활동범위를 확대할수록 권한남용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점은 차후의 상법개정에서 유념할 과제라고 할 것이다.
시민단체에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이 도입되는 회사기회규정이나 이중대표소송 등이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이익상충거래를 봉쇄하는데 미흡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사책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도입된다니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상법도 다른 입법과 마찬가지로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반대의 목소리를 무리하게 억누르고 이상을 단숨에 실현하려하기 보다는 한걸음이라도 착실히 전진하는 편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경우도 있다.
200조를 훌쩍 넘는 방대한 개정조항이 모두 완벽한 것이라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논란을 벗어나 크게 보면 이번 개정안은 국제적인 입법동향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확신한다.
김건식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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