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이후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의문이 인다. 국무총리와 장관들, 여당 인사들의 엇갈린 말들에서 생기는 혼란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일일 발언들이 압권이다. 핵실험 첫 날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했다가 다음 날엔 "포용정책이 핵실험 가져왔는지 인과관계를 따져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포용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로 선회했다. 여야 대표와 전직 대통령,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차례로 가지면서 궤도를 수정하더니 이틀 만에 입장은 정반대로 달라졌다.
차례로 이어진 간담회가 조금씩 성격을 달리한다고 보면 각 발언들은 그에 어울리게 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포용정책을 두고 대통령의 생각이 몇 번의 간담회로 변했다고 보기는 무리다. 두어 번의 식사 자리에서 오락가락 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 아니다. 그럼, 포용정책을 회의했던 당초 발언은 무엇이고, 이를 되돌리는 발언은 또 무엇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든다.
● 대통령, 위기관리 如反掌
포용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게 그의 본심임은 확인된 바 대로이지만 대통령의 위기관리정책이 손바닥 뒤집기 같아서야 그것은 거의 우롱이다. 포용을 골간으로 하는 대북정책을 고집스럽게 독점하는 데 열중하던 대통령이 반대자들과의 논의를 자청하는 개방적 모습에서 진일보를 느끼게 했지만 그런 기대에 결국 우롱을 안긴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김정일과 노무현의 게임으로만 본다면 이번 핵실험은 김정일의 완전한 한판승이다. 핵 문제는 대통령의 관리 범위 안에서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강조해 왔지만 북한은 '핵 불용'이라는 우리의 정책 목표를 여지 없이 꺾었다.
남북한이 핵 불용 정책과 핵 무장 정책으로 대결을 벌인 것에 견주면 적어도 북한은 이 단계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여기에는 미국이 있고, 중국이 가세하고, 양자회담이 있고, 6자회담이라는 틀이 진치고 있지만 그 사이의 어느 틈새인가를 북한은 정확히 간파해 뚫었다.
핵실험은 적어도 정부정책에 관한 한 이미 핵 공격이나 마찬가지다. 핵 공격이 절멸을 부르는 것처럼 정부 대북정책의 실패도 총체적 붕괴상태라고 할 만하다. 노 대통령이 포용정책을 버릴 듯하다가, 다시 포기할 수 없다고 돌아설 것으로 북한은 이미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제재 문제 등을 두고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 벌어지는 혼선과 논란 역시 남한 정세를 예측한 북한의 계산 안에 있었을 것 같다. 핵실험 이후의 사태까지 예상의 범주 안에 맴돌고 있다면 정부의 정책은 이중으로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포용정책에 관한 노 대통령의 세 마디는 언뜻 논리적 연결성을 갖는 듯하다. 핵 실험 당일 충격을 말하는 것이 '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것이고,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는 말은 짐짓 이성적 판단을 시도한 것이며 이어 '포용정책을 포기할 수도 없다'고 결론을 이어간 모양새다. 그 사이 총리와 장관, 여당에서 중구난방의 혼선과 간섭현상이 극심했고, 이는 곧 중심부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려냈다.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을 위기에 처한 고민으로 봐주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핵 위기 앞에 선 대통령에게 '노심(盧心)은 뭘까'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위기다.
● 대북정책 이중의 실패
대북 정책의 실패는 곧 포용의 실패이다. 변호사의 변론은 악마를 변호할 때도 정연한 논리와 법리를 편다고 한다. 핵 무장을 한 북한 앞에서 포용정책의 원론적 논란을 벌이는 것은 핀트를 잃은, 주제 넘은 일이다. 북한은 동포국가이자 적대국가였지만, 이제 동포국가이기 이전에 핵 국가이다. 핵 실험 '이전'과 '이후'는 그렇게 다르다.
핵 실험은 전과 후를 분명하게 가른다. '이후'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상대의 포용을 말하는 것은 선후가 틀린다. 핵 국가를 포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노심을 묻는 의문이 그 것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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