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60주년 기념식이 열린 13일 서울대는 축제 분위기였다. 보직 교수들을 중심으로 “세계 속의 대학으로 거듭날 전기가 마련됐다”는 장밋빛 전망이 관악캠퍼스를 뒤덮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갈 길이 한 참 멀다”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서울대 특수법인화’ 때문이다.
서울대가 법인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법인화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서울대는 100% 따를 수 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구성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서울대는 정운찬 전 총장때만 하더라도 법인화에 상당한 무게 중심을 뒀던 게 사실이다. 정 전 총장은 공ㆍ사석에서 “서울대가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성장하려면 특수법인이 돼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 처럼 했다.
이런 정 전 총장의 ‘의지’를 등에 업고 서울대는 지난해 1년 여 동안 법인화로 가기 위한 연구를 착실히 진행했다. 태스크포스팀은 5월 수 백 페이지 분량의 법인화 보고서까지 냈다. 결론은 “법인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장무 총장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이 총장은 “법인화는 민감한 사안이 많아 장기적으로 검토하는 게 바람직 하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일종의 시간벌기지만, 자신의 임기 중에는 할 의사가 없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정쩡한 집행부의 태도 만큼이나 서울대 내부에서도 법인화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부 예산에 100% 의존하는 현행 체제로는 ‘탈(脫) 아시아권 대학’에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법인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인문계열을 축으로 한 반대 목소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서울대가 정부 재정 지원 없이 홀로 서기에는 시기 상조이며, (법인으로 바뀌면) 안정적 교육과 연구 대신 짧은 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만 몰두하게 돼 대학의 자율적 연구가 침해된다는 논리를 대고 있다. 학문의 상업화를 불러 와 기초 학문이 죽고 말 것 이라는 지적도 많다. 사회대의 한 교수는 “일본 도쿄대(東京大)가 법인화 후 높은 신용평가등급(AAA)를 받은 사실이 서울대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며 “일본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서울대는 교육부의 법인화 추진 압력이 거세지자 고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립대가 정부 시책을 어길 경우 쏟아질 여론의 비난이 매우 부담스러운 눈치다. 서울대는 이 때문에 최근 교육부에 3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법인화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서울대가 소유한 전국 각지 부동산 등 모든 자산(국가 소유)를 그대로 넘기고 ▦최소한 지금 수준의 국고보조금을 상당 기간 유지하며 ▦교수와 직원의 신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신분 보장 문제를 빼면 교육부의 법인화 방안과 한참 동떨어진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인화를 안하겠다는 뜻”이라고 불쾌해했다.
교육계에서는 서울대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이 총장이 학내 반대 의견을 의식해 법인화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기발전계획위원회에서 내년 3월까지 법인화 안을 만들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법대 "110돌", 농생대 "100돌" 한지붕 모래알가족
“대학 본부는 개교 60주년 이라지만 법대는 10년 전에 100주년이라고 기념관을 짓고 농생대도 9월에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개교 110년으로 해야지요.”
서울대 인문대의 한 교수는 개교 60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정말 60년이 맞는 것이냐”며 “서울대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서울대는 1946년 미 군정청 문교부가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을 발표하면서 경성대학(옛 경성제국대학)과 10개의 관공립 전문학교를 통합, 9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을 설립하면서 출발했다.
하지만 몇몇 단과대는 ‘자기들 만의 뿌리’를 고집하고 있다. 법대는 법관양성소가 만들어진 1895년을 시작으로 여긴다. 농대는 대한제국시절(1906년)의 ‘농림학교’를, 치대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1922년)를 각각 모체로 하고 있다. 의대는 홈페이지에서 광혜원(1885년), 종두의양성소(1897년), 의학교(1899년)를 기원으로 한다고 소개했다.
사회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는 일제 잔재를 없애고 우리 만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종합대학을 필요하다는 국민적 열망에 따라 탄생했다”며 “100년이 됐다는 일부 단대는 일제 시대도 그들 역사에 포함시키는 것이냐”고 따졌다.
또 다른 사회대 교수는 “서울대는 뿌리 다른 여러 집이 한 지붕에 아래 따로 떨어져 사는 모양”이라며 “서울대 하면 딱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도 없이 그저 ‘모래알’ 이라고 불리는 것도 틀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방과 융합으로 세계 일류 대학이 되자는 비전만 제시할 게 아니라 서울대의 정체성을 찾는 일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 어윤대 고대 총장 "3不중 본고사는 대학자율 맡겨야"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지역균형선발제도와 기여입학제는 반대하되 본고사 도입은 각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게 옳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입 3불(고교등급제ㆍ본고사ㆍ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중 본고사는 사실상 부활해야 한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어 총장은 13일 일부 언론과 만나 “정부 정책에 맞추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역균형선발제도를 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서울대나 고려대나 같은 사람을 뽑는다면 국립대와 사립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여입학제와 관련,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며 “대학 입학을 위해 돈을 줬다면 일반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입학한 학생도 행복하게 대학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 총장은 또 “대입 전형때 본고사 실시 여부나 학생부 성적 반영비율 등은 대학에 맡기는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 총장은 이어 정부의 사립대 규제에 대해서는“옛날에는 사립대를 만들면 돈을 번다고 했지만 지금은 모든게투명해져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며“그렇게 투명해지는 데 따라 정부 규제도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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