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세상에서 거짓말은 성립될 수 있나마리아 베테티니 지음ㆍ장충섭 옮김 / 가람기획 발행ㆍ1만원
나무 인형 피노키오의 수난은 아무래도 가혹하다.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의 이 유명한 개구쟁이 꼬마는 몇 차례의 별 악의 없는 거짓말의 대가(代價)로 곡예사의 불에 타 죽을 위기를 맞고, 익사 위험에 빠졌다가 고래에게 삼켜지기도 한다. 또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져 모욕적인 창피를 당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어른들은 이 동화를 읽는 아이들에게, 피노키오의 파란 머리 천사처럼, 근엄한 어조로 협박하듯 타이른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고. 거짓말을 못하게 하기 위한 이 위협은 거짓말인가, 아닌가.
자전하는 지구 위의 누군가가 노을 진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지는 해를 보라”고 한다면, 그 말은 참인가 거짓인가.
중세 철학을 전공한 이탈리아 학자 마리아 베테티니의 책 ‘거짓말에 관한 작은 역사’는 거짓말에 관한 인류의 재미있는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그의 책은 거짓의 세상에서 참의 복권을 위해 애쓰지도, 참의 전횡 아래 신음하는 거짓의 명예를 복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진실과 거짓의 공생 관계’를 이야기한다. 총체적 거짓의 세상에서 거짓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의 ‘거짓말의 향연’은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신화, 문학과 철학의 사유까지 다채로운 사례들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거짓말 하는 기술을 “영리한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했던 플라톤의 사유, 온갖 거짓말로 유사 이래 그를 아는 모든 인류를 희롱한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 거짓말을 군주의 어엿한 통치 기술로 대접한 마키아벨리…. 반면 철학자 칸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허용하면 윤리의 토대 자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거짓말쟁이는 사회를 해체한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모든 아름다운 창조물들이 지닌 예술적 허구와 과학 발전을 이끈 오류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책은 참과 거짓의 다양한 층위를 풍부한 교양적 지식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서문도 재미있다. “이 책은 거짓말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거짓된 말 없이도 얼마나 멋지게 속임을 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책이다.” 그 속임에 넘어가는 일은 즐겁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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