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금융제재 해제 여부가 핵실험 위기 국면을 해결할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핵실험 이후 침묵하던 북한은 자신들의 논리를 “금융제재 때문에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정리한 듯 하다.
북한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11일 일본 교도통신 회견에서 “금융제재의 모자를 쓰고 6자회담에 나갈 수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북한 외무성도 같은 날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대화와 대결에 다같이 준비돼 있다”고 협상 의지를 밝혔다.
사실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미국의 금융제재 압박에 대한 분풀이 성격이 강했다. 북한은 6월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했다.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핵폐기 협상을 함께 논의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위기를 고조시켰다. 북한은 이후 “금융제재를 해제한다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다시 미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최후의 카드인 핵실험까지 이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금융제재 문제가 그 만큼 심각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북한 자금 2,400만 달러가 예치된 마카오 소재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주요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이후 1년간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전세게 금융기관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대북 거래를 중단하는 통에 북한의 대외 금융거래망이 붕괴됐다. 여기에 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BDA 계좌 동결은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격이었다. 미국은 심지어 “대북 금융제재의 진짜 목표는 북한의 변화를 보는 것”(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이라며, 김 위원장이 가장 걱정하는 체제 변화(regime change)를 거론하기도 했다.
핵실험에 이어 금융제재 해제라는 협상재개 조건까지 던진 북한은 당분간 미중 고위급 협의, 한중정상회담 결과와 미국의 태도변화 여부 등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미국이 협상쪽에 무게를 둔다면 방법은 있다.
미 재무부가 그 동안 조사했던 BDA 돈세탁 혐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제가 없는 북한 계좌 동결조치를 해제하는 성의를 표시하고, 북한도 일단 협상장에 나와 핵실험 제재조치 등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금융제재를 둘러싼 진전이 없을 경우 북한은 추가 핵실험, 플루토늄 추출 같은 물리적 대응조치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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