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이 우리 외교관들을 협박해 암호 해독 프로그램 입수를 시도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재외공관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암호 체계는 국가 정보망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정보여서 만의 하나라도 일부 내용이 북한으로 건너갔다면 외교ㆍ정보기관의 암호 체계를 전면 재편하는 최악의 안보사태로 기록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은 8월 관련 첩보를 입수한 뒤 극도의 보안 속에 수사를 진행해왔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두 기관이 언론에 내용이 공개될까봐 무척 걱정을 했었다”고 전했다.
북한이 재외공관의 외교관을 상대로 국가기밀을 빼내려 한 시도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 경우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아 수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정당국은 외교부의 의뢰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협박범인 북한 공작원의 신병을 확보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만약 영사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약점이 잡혀 협박을 당했을 경우 외교부도 관리 책임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암호 관련 자료를 입수하려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협박을 받은 외교관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국정원도 사건 초기부터 비상 체제를 가동하며 조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 공작원은 영사들을 협박하면서 ‘과거처럼 협조를 잘 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사들이 상당 기간 전부터 북한측과 교류하면서 공관의 주요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정당국이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대목은 암호 해독 프로그램이 실제 북한으로 건너갔는지 여부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일본군의 암호해독에 성공한 것이 태평양 전쟁을 1년 일찍 종식시켰다는 평가는 암호 체계의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외교ㆍ정보기관은 암호화된 전문을 통해 국내 본부와 교신하고 있다. 이러한 암호를 평문으로 풀어주는 암호 해독 프로그램이 넘어간다면 북한에 우리 외교의 ‘안마당’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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