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방송인 정지영씨가 번역했다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한경BP 발행)가 대리 번역 시비에 휘말리면서 출판계의 추한 관행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아직 실제 번역자라고 주장한 전문번역가 김모씨의 주장이 옳은지, 정씨와 김씨 두 사람의 ‘이중 번역’이라는 출판사의 해명이 옳은지는 가려지지 않았다. 마시멜로>
다만 분명한 것은 출판사가 김씨에게 번역을 맡기면서 ‘번역자로 제3자를 내세울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다. 김씨도 이를 수용했고, 정씨도 정황상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독자들은 이 같은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하지만 출판계의 반응은 대체로 덤덤하다. 대리 번역 문제가 출판계의 공공연한 비밀이고 관행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출판평론가 A씨는 수년 전 모 출판사로부터 외국서적 번역 원고의 감수를 의뢰받았다. 하지만 한 달여 뒤 출간된 책에는 그의 이름이 역자로 찍혀 있었다. A씨는 “대리 번역, 대필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출판사가 대한민국에 과연 몇 개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트렌드와 타이밍이 성패를 좌우하는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의 경우 고속(高速) 번역이 불가피하고, 출판사들은 부득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문 번역자(혹은 집단)에 의존하게 된다. 거기에 ‘스타 마케팅’전략이 결합한 전형적인 사례가 <마시멜로 이야기> 라는 것이다. 마시멜로>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마시멜로 이야기> 류의 책에서 독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메시지이지 문체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번역자가 누구든, 내용만 제대로 전달하면 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리 번역이야 외국서적이라는 제한적 장르에 국한된 문제지만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각 장르와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대필”이라고 지적했다. 마시멜로>
외국에서도 대리 번역ㆍ대필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은 번역이나 집필의 경위와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독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는 점이다. 출판계 관계자는 “우리 출판계가 역자나 저자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정 노력을 펼치는 게 우선”이라며 “그러나 영세한 출판업계 사정과 열악한 시장 상황, 치열한 경쟁구도 하에서 과연 누가 먼저 십자가를 지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이번 대리 번역 논란은 우리 출판계가 안고 있는 고질에 비추어 보면 아주 사소한 일탈이자 작은 증상일 뿐”이라며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출판계 전반의 체질 개선과 책 소비문화의 수준 제고 등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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