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직하고 있는 사범대학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사범대는 의대, 법대, 경영대와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대학이 되었다.
사범대학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 역시 우수한 학생이 대거 지원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사회적 불안정성의 심화와 취업난의 가중으로 인하여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에 대한 선호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 사범대ㆍ공무원 인기의 이유
이러한 사회적 추세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얼마 전 서울시 7급과 9급 공무원 임용시험이 162대 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비록 보수나 대우가 높지 않다 하더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취업도 어렵지만, 좋은 직장을 얻었더라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일반화되고 있다. 쫓겨날 염려가 거의 없고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들은 소위 '철밥통'이라고 해서 주변의 부러움과 시샘을 받는다. 젊은이들이 그런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안정된 일자리의 문제는 젊은이들에게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조기 퇴직의 여파로 중년의 실직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급격히 진행되는 사회 고령화 때문에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노년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상식처럼 되었지만, 이들이 제2인생을 펼칠 자리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다수가 인생의 절반을 여생(餘生)으로 빈둥거리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이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모여서 '미래사회 대비 장수문화 포럼'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들은 '정년 없는 사회'와 '삶의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힘을 모아 여러가지 활동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이 좀 먹었다고 맥없이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지 않고, 체력과 능력이 허락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건강과 경륜을 지닌 분들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 고령화사회의 '장수문화'는
그러나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열망과 나이 드신 분들이 정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망 사이에는 매울 수 없는 틈이 있어 보인다.
이 틈은 세대 간의 치열한 자리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지고 있던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은 어디 가서 자리를 구해야 할까?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 싼 세대 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젊은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나이 든 세대가 자신들의 능력과 체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리와 권력을 젊은 세대에게 자발적으로 넘겨주고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처럼 살겠다는 태도가 무조건 미덕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조건 젊게 사는 것, 무조건 오래 사는 것보다는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것이 더 품위있고 아름다운 삶이다. 젊음은 젊은이의 특권이고, 늙음은 늙은이의 특권이다.
이남호ㆍ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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