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 패션으로 잘 나가는 상품이예요”
일교차가 큰 이맘때 요긴한 겉옷 한 장 장만할까 싶어 찾은 의류매장. 매장직원이 대뜸 요즘 유행하는 조끼를 권하며 던진 말 한마디가 귀에 퍽 거슬렸다. ‘간절기 패션’이라니!
그러고 보니 얼마전 한 패션업체가 보내온 보도자료도 제목이 ‘간절기 패션 코디 요령’이었고, 인터넷 쇼핑몰에 요란하게 번쩍이는 광고 문구도 ‘간절기 상품 초특가 세일’이다. 도대체 간절기 패션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일반명사가 된 것일까.
내친 김에 인터넷 포탈서비스 지식검색을 열어봤더니 다음과 같은 답이 달렸다.
‘일본식 한자어 같아 보이는 간절기(間節氣)는 일본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는 낱말이나 일본글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지난 2000년에 발간한 신어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간절기란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올 무렵의 그 사이 기간을 나타내는 말을 일컫는 신조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은 낱말입니다. 간절기는 주로 패션업계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 패션이 생활이면서 문화이면서 동시에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등장한 단어입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우선 2000년도 신어 목록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신어 목록은 한해동안 신문이나 잡지에 새로 등장한 유행어나 비속어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법상 올바른가 아닌가는 따지지않는다. 패션계에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간간이 쓰이기 시작했으나 업계 전문용어는 아니다. 패션관련 용어를 집대성한 ‘패션큰사전’(교문사ㆍ1999)과 ‘복식사전’(경춘사ㆍ1995), 패션산업 현장용어를 중점적으로 소개한 ‘패션비즈니스사전’(교학연구사ㆍ1997) 어디에도 ‘간절기’ 혹은 ‘간절기 패션’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렇다면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의 이행기를 일컫는 환절기(換節期)라는 어엿한 우리 말이 있는데도 간절기라는 표현이 쓰이게 된 진짜 배경은 뭘까. 한마디로 하자면 일본식 표현의 오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어에는 환절기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다. 간절기가 일본어 사전에 없는 이유다. 대신 ‘절기의 사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어로 표기하면 ‘節氣の間’이다. ‘間(ぁぃだ)’는 공간적 시간적 간격을 나타내는 용어다.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무분별하게 오역한 것이 우리 고유의 단어를 밀어내고 마치 업계 전문용어인양 대접받는 현실은 슬프다. 마침 얼마전 한글날에는 핫팬츠 대신 ‘한뼘바지’라는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캠페인도 소개됐다. 이미 정착한 외래어를 굳이 한글로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가능할 터. 그러나 외래어도 오역에 근거한 것이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지않을까.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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