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2일 출항했다. 63개국 245편의 영화들이 진수성찬이 되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유명 작품도 많지만 숨은 보석 같은 수작도 적지 않다. 시간은 짧고 맛보고 싶은 영화는 넘친다. ‘영화의 바다’에서 힘쓰지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싱싱한 대어를 낚는 방법을 테마별로 소개한다.
나만의 칸영화제
올해 부산은 작은 칸이다. 지난 5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대상)을 거머쥔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포함해 칸의 주요 상영작 24편이 부산의 스크린을 찾았다. 칸을 열광케 한 작품명만 들어도 심장 박동이 거세지는 시네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 이들 영화만 꼼꼼히 챙겨봐도 칸에 다녀온 것과 다름 없다.
브뤼노 뒤몽 감독의 ‘플랑드르’(심사위원대상), 라쉬드 부사렙 감독의 ‘영광의 날들’(남우주연상), 롤프 드 헤르 감독의 ‘열 척의 카누’(심사위원특별상), ‘부쿠레슈티의 동쪽’(황금카메라상), ‘스니퍼’(단편부문 황금종려상)가 상영작 목록에 올라있다. 수상은 못했지만 경쟁부문에 오른 난니 모레티의 ‘악어’와 로예(婁燁)의 ‘여름 궁전’,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패스트푸드의 제국’,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라이트 인 더 더스크’도 영사기에 걸린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도 많다. ‘그르바비차’(황금곰상), ‘관타나모로 가는 길’(감독상), ‘소프’(심사위원대상), ‘레퀴엠’(여우주연상)이 상영된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풍성하다. ‘칸 쿠웨이’는 ‘밀림의 왕자 레오’를 연상시키는 태국 최초의 3차원 장편 애니메이션. 장대한 전투 장면이 펼쳐지는 후반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태국에서 올 상반기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싱가포르의 장편 애니메이션 ‘조디악’은 동양의 12간지를 소재로 한 가족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브레이브 스토리’와 ‘시간을 건너온 소녀’도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모험과 신비의 세계가 스크린서 명멸한다.
알콩달콩,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픈 연인에게는 싱가포르의 ‘러브 스토리’와 일본영화 ‘무지개의 여신’이 제격이다. ‘러브 스토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의 인물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웃음으로 되묻는다. 이와이 순지(岩井俊二) 감독이 기획한 ‘무지개의 여신’은 사랑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남자와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여자의 관계를 수채화풍 영상미로 그려낸다.
사회문제를 파고들다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회 변혁의 도구라 믿는 열혈 청춘들에게 어울릴 영화도 적잖다.
이란 영화 ‘정맥주사’는 마약에 중독된 젊은 여성과 그의 어머니의 눈물겨운 자식사랑을 담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의 마약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점이 이채롭다. 바흐만 고바디의 ‘반달’은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족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한다. 불법 사행성 도박의 폐해를 파헤친 필리핀 영화 ‘쿠브라도르’도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중국의 ‘럭셔리카’와 ‘주밍, 도시로 가다’는 급격한 도시화의 그늘에 가려진 중국 소시민의 고통을 예리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카불 익스프레스’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지전의 혼란과 비극을 고발한다.
평범함은 가라
남들 다 보는 평범한 영화가 싫다면, 톡톡 튀는 상상력과 특별한 사연으로 무장한 작품을 만나자.
‘밀라레파’의 감독 네텐 초클링은 부탄에선 널리 알려진 고승. ‘컵’으로 유명세를 떨친 승려 감독 키엔체 노르부의 동료다. 부탄의 또 다른 승려 감독이 만든 영화는 과연 어떨지 흥미롭다.
홍콩배우 다니엘 우가 연출한 ‘사대천왕’은 보기 드문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인 척 하는 허구)다. 4명의 인기 배우가 밴드를 결성하여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그렸다. 국내 일본영화 마니아를 사로잡은 ‘불량공주 모모코’의 나카시마 데츠야(中島徹也) 감독의 신작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도 눈에 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판타지의 세계가 돋보인다. 일본영화 ‘울 100%’, 대만영화 ‘새해의 꿈’도 기기묘묘한 판타지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아시아 거장들의 유혹
이름만으로도 묵직함을 던져주는 아시아 거장들의 신작도 부산을 빛낸다. 2004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은 그의 첫 사무라이 영화인 ‘하나’를 선보인다. 기괴한 감수성의 소유자 츠카모토 신야(塚本晋也)는 꿈 속에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 ‘악몽탐정’을 출품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개미의 통곡’은 인도를 여행하는 한 부부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태국이 봉?세계적인 영화작가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은 영화의 본질을 탐색하는 ‘징후와 세기’를 소개한다. 지난해 노골적인 성 표현이 담긴 ‘흔들리는 구름’으로 부산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차이밍량(蔡明亮)의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도 상영한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감독 가린 누그로호의 멜로 ‘오페라 자바’, 인도 작가주의의 대가 무랄리 나이르의 ‘운니’도 관객과 만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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