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사박 가을을 밟는다. 신발 밑창에서 전해오는 흙길의 감촉. 가을볕이 녹아 들어 부드럽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버린 후 맨발로 땅을 딛는다. 생명의 원천인 대지, 가이아(Gaia)의 맨 살이다.
포근한 가을 햇살을 오래 받았으니 따뜻할 줄 알았는데 흙길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렇다고 섬칫 놀랄만한 한기는 아니다. 차갑긴 하지만 부드럽게 발을 감싸는 편안함이 있다.
원시의 감촉을 되찾은 발바닥이 신이 났다. 옥죄었던 양말과 신발에서의 해방이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발바닥에서 올라온 생기가 전신을 훑고 올라오며 민트향 번지듯 몸 속 구석구석에 상쾌함을 불어넣는다.
문경새재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감각을 지닌 소중한 흙길이다. 조선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 새도 쉬고 넘는다는 새재다. 6.3km 전 구간이 흙길로 남아있는 국내 최고의 트레킹 코스다.
70년대 국토개발을 진두지휘 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이 고갯길 만큼은 포장하지 말고 흙길로 남겨두라고 지시해 천만다행으로 남은 흙길이다. 여느 길이 그렇듯 새재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또 구불구불한 노선이 반듯하게 펴졌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길에서 지금처럼 눈과 귀, 마음이 편안히 열리겠는가.
조선시대 500년간 영남의 관문 역할을 했던 새재.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추풍령과 새재, 죽령 등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이중 새재 코스가 열나흘 걸리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추풍령은 보름길, 죽령은 열엿새길이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새재를 고집했다. 추풍령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낙방할 것 같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떨어질 수 있어 피했다고 한다. 새재를 넘어 과거를 치른 영남 유생들의 ‘합격률’이 높자 호남의 선비들도 일부러 영남 땅으로 돌아 넘었다는 고개다.
새재에는 고갯길 입구의 주흘관, 중턱의 조곡관, 고갯마루의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이 있다.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으로도 불리는 이 성곽은 임진왜란때 순식간에 한양을 빼앗기자 전란이 끝난 후 부랴부랴 쌓은 것이다.
새재 여행은 주흘관에서 시작한다. 주흘산과 조령산의 능선이 그대로 흘러내린 주흘관의 거대한 성채를 돌아들어가면 드라마 ‘왕건’을 찍었던 세트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며 흙길을 걷는 걸음은 점점 가벼워진다. 문경시에서 매일 물을 적시고 마사토를 뿌려 단장한 매끄러운 흙길은 돌멩이 하나 없이 매끈하다. 흙길 순례자들은 맨발에 상처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조곡관 까지는 곱게 물드는 단풍과 함께 경상도 감찰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교구정, 나그네 한 수 쉬었다 가던 주막, ‘산불됴심’ 한글비 등 볼거리가 많다. 길을 따라 흐르는 맑디 맑은 계곡물이 내내 동무해주는 편안한 길이다. 조곡관을 지나면 길은 숲으로 들어온 듯 고즈넉해진다. 조곡관 뒤 솔향 그윽한 송림은 맨발의 여정을 잠시 쉬며 준비한 간식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조령관까지 길은 인적이 드물어 조용히 자신과 이야기하며 걷는 공간.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지나 ‘장원급제길’이라는 소로로 접어들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있다.
타박타박 6.5km의 새재 흙길을 다 오르면 제3관문인 조령관이다. 성문 너머는 충북 괴산땅. 괴산쪽 고갯길은 아쉽게도 포장도로다. 이 고갯마루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어느 기왓장을 타고 흘러내리느냐에 따라 남쪽의 낙동강 물로 합류되거나 북쪽의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문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문경새재 '지금 山 축제 풍성'
아름다운 고갯길 문경새재에서 맨발로 흙길을 달리는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본사와 스포츠한국이 주최하는 제1회 문경새재 단축마라톤 및 가족건강 맨발걷기 대회가 28일 새재 일원에서 펼쳐진다. 이때는 새재의 단풍이 절정으로 붉게 타오르는 숲에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맨발로 달리는 단축마라톤은 제2관문까지 왕복(6km)과 제3관문까지 왕복(13km) 구간 등 2개 코스가 준비된다. 남녀 각 1~3위에는 트로피와 상장 등이 수여되고 최고령자, 최연소자 완주자상도 준비됐다. 오전8시까지 집결해 개회식을 거쳐 9시30분 마라톤 및 걷기대회가 시작된다.
접수는 15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http//marathon.liports.com)나 팩스(053-754-1905)로 신청을 받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건강걷기 참가비는 1만원이고 6km 마라톤은 2만원, 13km 마라톤은 3만원이다. 참가자는 문경새재 입장료(2,100원)를 따로 낼 필요가 없고, 행사가 끝난 뒤 문경읍의 문경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참가자 전원에게 5만원 상당의 고급 티셔츠가 제공된다. (053)755-5881
문경시가 주최해 12일 시작한 ‘2006 마운틴 페스티벌’은 15일까지 이어진다. 문경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 뽑히는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 대야산 등 4개의 명산과 함께 조령산 등 1,000m 이상의 산을 9개나 품고 있다.
축제 기간에는 문경새재와 조령산 일원을 산행하는 전국 등산대회와 주흘산 산행대회,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맨발 걷기 대회 등이 펼쳐진다. 불정자연휴양림내 산악자전거 경기장에서는 전국 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리고, 문경활공랜드에서는 전국 패러글라이딩 대회가 개최돼 쪽빛의 가을 하늘에 색색의 수를 놓을 예정이다. 문경관광사격장에서는 전국 클레이사격대회도 함께 진행된다.
www.sanfestival.com (054)550-6394
■ 문경새재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선비들이 넘나들던 문경새재는 청운의 꿈을 가진 선비들 수 만큼의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달빛과 별빛을 등불삼아 오르던 고갯길, 시심(詩心)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는 선비가 아닐 것이다. 수 많은 시인묵객의 흔적이 새겨진 문경새재의 속살과 주변에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을 안내한다.
▲ 문경새재 놓칠 수 없는 볼 거리
제1관문인 주흘관을 돌아 들어가 처음 맞는 곳이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이다. 2000년에 제작된 곳으로 문경과 문경새재를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게 한 공신이다. 국내 최초의 고려촌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문경새재의 명성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지금은 너무 많이 생겨 문제가 된 ‘세트장 관광지’의 효시인 곳이다.
주흘관에서 1.2km 가량 위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 견고하게 돌담을 두른 곳은 조령원터. 옛날의 국영 여관이 있던 자리다. 이곳에서 500m 더 오르면 옛 주막터에 주막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검은 빛 감도는 묵직한 기와건물인 교귀정은 경상도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곳. 교귀정 아래에는 수정 같은 계곡물이 물보라를 일으킨다는 팔왕폭포다. 오랜 가을 가뭄으로 물이 적어 지금은 폭포의 맛이 적다. 2관문 못미쳐 있는 ‘산불됴심’ 한글비는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곡관을 지나 600m쯤 가면 ‘문경새재민요비’가 서있다. 바로 옆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구성진 가락의 민요가 흘러나온다. 새재에 온 사람들 중에서 집안에 입시를 치러야 하는 가족이 있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책바위다. 3관문 못미쳐 왼쪽 좁은 길로 접어들어야 만난다. 시에서는 이 길을 장원급제길이라 이름했다.
책을 펼쳐놓은 모양의 돌 위로 수많은 다른 돌들이 탑을 이루고 있다. 인근의 큰 부자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 시름시름 앓자 수소문 끝에 유명한 도사를 만났다. 도사는 “집터를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직접 이 담을 헐어 새재 꼭대기의 책바위 주변에 쌓으라”고 일러준다. 3년에 걸쳐 매일 돌을 산속으로 져 나르던 몸은 어느새 튼튼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건강과 합격을 기원하는 영험스러운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 문경새재 주변 즐길 거리.
문경의 새로 뜨는 관광명소는 철로자전거다. 탄광이 문닫으며 폐선이 된 철로를 이용한다. 출발역은 진남역. 진남역에서 출발해 불정역 쪽으로 향하거나 가은역 쪽으로 가는 2개의 코스가 있다. 불정역 방향은 낙동강 지류인 영강을 벗삼는 계곡미가 으뜸이고 가은역 방향은 어두컴컴한 2개의 터널을 지나는 재미가 색다르다. 각 방향 왕복 4km로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1대 당 1만원. (054)550-6375
문경읍의 문경종합온천은 맑은 물의 온천과 황토빛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지하 700m에서 뽑아 올렸다는 알카리성 온천은 수안보처럼 무색 무취의 맑은 물이고, 지하 900m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 채취했다는 칼슘ㆍ중탄산천 온천물은 황토를 풀어놓은 듯 뿌옇다. 칼슘ㆍ중탄산천 온천은 30도로 몸의 온도보다 낮다. 서늘하면서도 몸을 상쾌하게 하는 이색 온천욕이다. 7,000원. (054)572-3333
강원 태백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탄광이 많던 지역이 문경이다. 가은읍에 있는 문경석탄박물관은 1994년 폐광된 은성광업소 자리에 세워진 전시관으로 연탄 모양의 둥근 건물이 이색적이다.
고생했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당시의 광부와 문경시청 공무원의 월급 봉투를 비교 전시한 코너도 재미있다. 광부가 2배 이상 높았다. 전시관 코스는 야외 전시공간을 지나 실제 석탄을 캐던 굴로 이어진다. 갱 안에 조성된 230m의 체험로에는 붕괴순간, 갱내 사무실, 갱내 점심식사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석탄박물관 옆에 드라마 연개소문 세트장이 새로 조성됐다. (054)571-2475
불정자연휴양림 가는 길 산속에 문경시가 직영하는 관광사격장이 있다. 공기총, 권총사격장과 함께 클레이사격장도 갖추고 있다. 날아가는 흙접시를 맞히는 클레이사격은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1통(25발)에 1만7,000원으로 다른 지역의 사격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054)550-6446
문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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