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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탄생 100주년' 학술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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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탄생 100주년' 학술 심포지엄

입력
2006.10.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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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랑’의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국내에서 처음 열린다. 지난 해 발족한 한나 아렌트 연구회(대표 백승현)는 한국정치사상학회(회장 강정인), 사회와철학연구회(회장 홍윤기)와 공동으로 14일 경희대 청운관 세미나실에서 아렌트 사상 전반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고 11일 밝혔다.

아렌트는 냉전시대 ‘힘의 정치’를 넘어서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구축한 사상가로 꼽힌다. 그는 ‘삶이 최고의 선’이라는 홉스의 인도에 따라 폭력과 전쟁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하던 냉전 시대에, 무국적자와 난민, 소수ㆍ약소민족의 존엄과 인간다운 가치의 중요성을 현실 정치의 맥락 안에서 이야기했다.

독일 출신 유대인인 그는 나치 체제 등장 이후 프랑스로 망명(1933)하지만 시오니스트를 도운 혐의로 비시정부에 의해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 미국으로 이주한다(1941). 1951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기까지 18년간 무국적 상태로 지내야 했던 그는 자신의 개인적, 시대적 경험을 토대로 쓴 ‘전체주의의 기원’(1951)과 ‘인간의 조건’(1958)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대의 전체주의, 곧 민족(인종)에 근거한 나치즘과 계급에 기초한 스탈린주의를 분석한 뒤 21세기의 인류에게‘정치 바깥의 윤리ㆍ도덕적 기준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때 정치는 붕괴한다’는 지침을 남겼다. 그는 ‘언어 행위를 통한 정치’, ‘조화와 경쟁의 정치’를 전체주의 너머의 진정한 정치적 삶의 형태로 상정했다.

홍원표 한국외대 교수는 번역 중인 영 부륄의 저서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사랑을 위하여’(인간사랑 근간)의 용어를 빌려 “나치즘이 ‘자연 이데올로기’이고 스탈린주의가 ‘역사 이데올로기’라 한다면, 아렌트의 이 같은 경고는 ‘도덕 이데올로기’에 의한 새로운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네오콘의 ‘악의 축’선언, 이슬람 근본주의자 등 극단적 테러 집단의 논리, 가까이는 노무현 정권과 386 권력층의 도덕적 우월주의 등이 배타적인 도덕 이데올로기의 현현이다.

한나 아렌트 연구회측은 최근 세계 지성계가 아렌트에 주목하는 현상을 두고 ‘아렌트 르네상스’라는 말이 생긴 연유를 이 같은 정치ㆍ시대적 맥락으로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와 아모르 문디’(Amor Mundiㆍ세계 사랑)라는 타이틀을 달고 열리는 이 ‘지적 성찬의 축제’는 아렌트 정치철학을 ‘실천적 보편성’ ‘새로운 시작’ 등의 개념들을 통해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레비나스와 막스 베버 등 다른 사상가들의 입장과 비교하는 한편, 불교 유교 등 동양 정치철학과의 접점을 모색하는 등 세 패널로 나뉘어 진행된다.

■ "아이히만의 악마성 우리 안에도 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사상의 핵심을 충실히 담고 있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이 김선욱 숭실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나치 전범이자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 참관기이자,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부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특징으로 세 가지의 무능을 지적한다. ‘말하기’와 ‘생각’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판단)’의 무능성이다.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최종 해결책’, 학살을 ‘특별 취급’이라고 부르는 등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자기들만의 언어규칙을 만들어 그 암호화한 체계 안에 머무름으로써 자신들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켰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말의 체계는 현실과 유리된 사유와 판단을 낳게 된다는 것이 아렌트의 지적이다. 그는 아이히만이라는 악의 현상과 근원을 ‘무사유’와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으로 설명하면서, 책의 마지막 한 줄을 이렇게 적고 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악마’인 아이히만에게서 평범함을 보았고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아렌트의 이 글이 1963년 미국 대중잡지 뉴요커에 실리자 유대인들은 거칠게 분노하며 그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의 현명한 통찰은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선명하게 입증됐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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