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영욕의 10년을 뒤로 한 채 올해를 끝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난다.
지난달 19일 뉴욕에서 가진 고별연설에서 “어깨에 올려놓은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는 심정이며 그 자리가 그리워질 것이다”고 감회를 토로했듯 그에게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아난은 1962년 유엔사무국 직원으로 시작해 34년간 유엔과 산하 전문기구에서 일해온 대표적인 유엔통이다. 1997년 사무총장에 오른 이후 주목 받지 못했던 빈국과 인권 문제, 개도국 문제 등을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시키며 유엔의 역할을 확대했다. 2001년에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엔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0년간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에 대한 평가는 유엔헌장의 규범과 인권법을 설파해 온‘세속적 교황’로 집약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1일 특집기사에서”아난은 자신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빈부격차 해소, 인권 문제, 기후변화협약 등 전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문제를 마치 거울 보듯 잘 반영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논평했다. 아난 총장의 연설문 작성자인 에드워드 몰티머는 “아난은 유엔의 양심이었다“며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때 인권과 빈곤, 개발이라는 세 단어를 떠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그러나 그의 높았던 이상에 비해 성과는 미미했다고 비판했다. 아난 총장이 강대국들의 이견에 부닥쳐 자신이 내놓은 비전을 실천할 기구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약속했던 유엔 개혁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들의 의견에 휘둘리면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 몰티머는 “아난 총장은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일을 하려고 했다”고 이 같은 비판을 간접 시인했다.
특히 2004년 터진 이라크 스캔들은 아난 총장의 명예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당시 아들 코조 아난이 유엔이 주도한 아라크 석유_식량 프로그램에 관여해 관련 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폴 볼커가 이끄는 유엔 진상조사위원회는 코조가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이라크 스캔들은 불법적이며 비윤리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아난 총장은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보다는 아들에 대한 변호에 급급했고, 기자들과 말싸움까지 하면서 유엔 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 코피 아난의 유엔 역정
1992 르완다, 보스니아 유엔평화유지군 담당 사무차장
1997 유엔 사무총장 취임
1998 바그다드 방문, 유엔 무기감시단 이라크 철수
1999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신유고연방 폭격 서명
2000 뉴욕 밀레니엄 정상회의 주최, 선진국들 2015년까지 후진국의 빈곤 문제 해결 분담
2001 유엔과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
2002 유엔 무기감시단 이라크 복귀
2003 수단 다르푸르 지역 대량학살 사건 발생
2003 바그다드 유엔 지부 피폭
2004 이라크 신문,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과 관련된 아들 코조 아난의 비리 폭로
2005 유엔 조사위원회, 이라크 스캔들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부패한 행위라고 결론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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