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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33> 헤르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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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33> 헤르만 불

입력
2006.10.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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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내 굴지의 한 재벌기업에서 고위직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국내외의 유명 골프장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골프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인데, 언젠가 내가 함께 산에 오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지레 손사래부터 쳐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무엇 때문에 그 험한 곳에 기어오르려고 고생을 해?”

나는 세상 사람들을 산에 오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눈다.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산 이야기를 해 봤자 소 귀에 경 읽기 일 뿐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술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혹시 헤르만 불이라고 들어봤어?”

나는 목젖으로 넘기던 술에 사래가 걸릴 만큼 놀랐다. 세상에, 산이라면 집 뒤의 야산에도 오르지 않던 사람의 입에서 헤르만 불(1924~1957)의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사연을 들어본즉슨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다. 자신의 회사에서 임원 재교육의 일환으로 헤르만 불의 자서전 ‘8,000미터의 위와 아래’를 읽게 했다는 것이다.

재벌기업 간부들을 위한 리더십 교육에서 모리스 에르족의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를 읽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쓰여져서 읽기도 수월하고 대단히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헤르만 불의 자서전이라니? 이 책은 너무 두껍고,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에게 권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책이다.

“처음에는 정말 괴롭더라구. 무슨 책이 생판 처음 들어보는 산 이름들만 줄줄이 나오고 맨날 거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야기뿐이니 재미도 없고.” 선배는 그러나 술자리가 무르익기도 전에 저 혼자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중간쯤 읽어가니까 이건 완전히 미치겠는 거야! 우리들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하고 하등 다를 바가 없더라고!”

이제 궁금해진 것은 나였다. 도대체 재벌그룹의 고위 간부는 헤르만 불의 삶과 등반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지독한 준비, 과감한 결단, 그리고 진인사대천명!” 솔직히 나는 감탄했다. 등반의 세계에 무지한 그가 헤르만 불의 삶을 단 세 마디로 정확하게 꿰뚫어 내다니! 덕분에 그날 술값은 내가 냈지만 더 없이 유쾌한 술자리였다.

등반의 세계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헤르만 불이다. 그만큼 그가 1953년에 이룩한 낭가파르바트 세계 초등은 유명한 사건이다. 산악사진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그의 초등 직전과 직후의 사진들이다. 초등 직전의 사진 속에 나오는 인물은 29세의 싱싱한 청년이다.

하지만 초등 직후에 찍힌 사진 속의 인물은 거의 노인처럼 보인다. 그가 홀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마지막 캠프로 돌아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정확히 41시간. 그 이틀의 시간 동안 헤르만 불은 인류가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했던 시공간 속을 저 홀로 누비고 다녔다. 그 처절하고 감동적인 기록이 바로 그의 유일한 자서전 ‘8,000미터의 위와 아래’이다.

헤르만 불은 세계 등반사에서 영원히 빛나는 ‘불멸의 스타’다. 그가 인류 최초로 배낭도, 산소통도 모두 집어 던지고 혈혈단신으로 8,000m 급 산의 정상에 올랐다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대기록이다. 하지만, 선배의 표현에 따르면, 진정 감동스러운 것은 스타가 되기 이전에 그가 쌓아온 ‘지독한 준비’다. 그는 23세가 되기 전에 134개의 봉우리에 올랐다. 그는 남들은 여름철에 오르는 암벽을 눈과 얼음이 뒤덮인 겨울철에 올랐다.

그는 고난도의 봉우리 25개를 33시간 만에 주파했다. 왜 그랬을까? 헤르만 불의 답변은 단순하되 묵직하다. “준비였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목숨을 걸고 한판승부를 벌여야 할 ‘궁극의 산’을 만날 텐데, 그때를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산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헤르만 불 자신 역시 자기가 ‘무엇’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준비된 사람만이 그 무엇을 해치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의 독일-오스트리아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원으로 발탁되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준비해왔는지를 섬광처럼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그가 남긴 한 마디는 거의 종교적인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나는 준비했습니다. 내 생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내가 아직 당신을 몰랐을 때에도 모든 것은 그 준비였습니다.”

헤르만 불은 마치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기 위하여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 산에 올랐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원정대장이 귀환을 명령하고 함께 오를 동반자마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바로 그 순간, 그는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모든 장비들을 ?집어 던지고 저 홀로 정상을 향하여 나아간 것이다. 그는 과연 살아서 내려올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을까? 알 수 없다. 훗날 그는 당시의 결단을 ‘최후의 모험’이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어떤 뜻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하지만 그 과감한 결단의 순간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면 결코 정상에 이를 수 없다. 헤르만 불은 담담하게 증언한다. “8,000m와 같은 거봉은 사람이 최후의 모험을 다하지 않고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헤르만 불이 ‘최후의 모험’을 결단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언제나 전율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생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도박이다. 하지만 결단을 못 내리고 돌아선다면 정상은 없다. 그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결단의 순간, 그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그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설사 올랐다 하더라도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지독하게 준비해온 사람이 최후의 결단을 내리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신의 몫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나면 이제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발 밑에 시커먼 지옥… 잠들면 죽는다" 8,000m 정상에 꼿꼿이 선 채 '죽음의 밤'보내

헤르만 불이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에 선 것은 1953년 7월 3일 오후 7시였다. 간단히 말해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는 캄캄한 밤에 저 홀로 하산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등정보다 힘든 것이 하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젠 한 짝이 등산화에서 벗겨져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져버린다. 그에게 남은 장비라고는 이제 등산용 스틱 두 개와 아이젠 한 짝 뿐이다. 정상 부근에는 잠시 궁둥이를 대고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는 이 상태에서 꼿꼿이 선채로 비박에 돌입한다. 세계 등반사상 가장 유명한 죽음의 비박이다. 그의 자서전 ‘8,000m의 위와 아래’에는 이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버린 초인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게는 추위를 막을 비박색도, 추락을 예방해주는 확보용 자일도 없으나, 앞으로 다가올 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일이 그저 당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는 잠들면 죽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면서도 깜빡 깜빡 잠이 든다. 그때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발 밑에는 시커먼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직 별이 있었다. 날이 밝지 않았나 보다.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해가 떠오를 지평선에 시선을 던졌다. 마침내 마지막 별도 흐려졌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산악문학작가 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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