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미국과 핵 담판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받은 다음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무조건적인 6자회담 복귀 등 시한부 '굴복' 요구에 맞서 '핵확산이냐 대화냐'라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핵실험 카드를 던져놓고 협상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9월25일 "아마 앞으로 6주 정도" 시점에 아시아를 순방하며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하나의 마지막 시도의 가능성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한 것을, '6주 시한부 굴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으로 인식하고 핵실험이란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핵실험 강행은 '행동으로 하는 위기조성전술'의 마지막 단계로 생존을 건 승부수다.
그동안 북한은 '벼랑끝 전술'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위기조성전술을 번갈아 구사해왔다. 지난해 2월10일의 핵보유 선언은 말로 하는 위기조성의 마지막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악의의 무시(malign neglect)' 정책으로 일관하자, 북한은 행동으로 하는 위기조성전술인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다.
대포동2호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실패, 안보리 결의안 채택, 미국과 일본의 제재강화 움직임에 맞서 '살라미 전술'에 따라 핵실험 선언을 통해서 말로 하는 위기조성의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북한은 10월3일 "핵무기 보유 선포는 핵실험을 전제한 것"이라고 밝혀, 핵실험 선언이 핵보유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핵보유 선언 이후에도 미국이 '잘못된 행동'에 협상이나 보상 없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하자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것이 바로 살라미 소시지를 얇게 잘라먹는 것처럼 핵문제를 세분화하여 단계별 위기수위를 높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이다.
북한은 6월1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초청에 미국이 응하지 않자,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8월26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서 6자회담의 유효성과 9ㆍ19 공동성명의 이행의지를 밝히고 금융제재를 풀고 명분을 주면 나오겠다고 했지만 미국이 또다시 이에 응하지 않자 핵실험이란 승부수를 들고 나왔다.
이제 북한이 들고 나올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나왔다. 핵실험이란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때문에 10년 이상 장기화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한반도 안보환경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비확산정책에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미국도 이제는 북한위협론을 유지하면서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이나 하면서 무시정책으로 일관할 수 없는 다급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동결됐던 플루토늄 방식의 핵개발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시 행정부는 국내외로부터 비확산정책의 실패란 비판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 과제는 핵실험 이후 위기관리와 북한의 핵보유를 저지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우리 정부의 북핵 불용이라는 대북정책 기본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도발행위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가 증폭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위기관리체제를 운영하면서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여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ㆍ미 직접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도록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듯이 우리 정부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만들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ㆍ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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