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으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경기부양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이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사태 전개에 따라 폭풍 직전 고요함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는 11일 “경기부양 쪽으로 거시경제정책 궤도를 수정할 준비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기존 입장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다.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내년 경제성장률을 4.6%로 예상했지만, 이는 북한 핵실험 사태 이전의 전망”이라며 “북핵 사태의 전개추이를 봐가며 연말 내년 경제운용계획을 짤 때, 필요하다면 경기부양 조치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선회는 군사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지 않는 이상 이번 사태가 두고두고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위축이 장기화하면 국민들은 소비를 줄이고, 기업들도 투자를 미루면서 실물경제가 냉각된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북핵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내년 성장률이 얼마로 떨어질지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분명한 것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제재와 북한의 대응 수위가 고조되면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고 외국자본이 빠져 나가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조원동 국장은 “해외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신용등급이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현재의 신용등급이 유지될 거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내년도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 경우 현재 국회 심의중인 내년 예산안을 수정하거나, 내년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한 뒤 하반기에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 재정을 확대할 경우 지출의 우선 순위는 사회간접시설(SOC) 투자 등 건설경기 부양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건설경기는 위축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내년 상반기는 돼야 저점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고 체감경기에 미치는 효과도 즉각적이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악화가 현실화할 경우 재정확대에 이어 금리인하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실제 경기부양 카드를 꺼낼지, 경기부양을 한다면 어떤 타이밍에, 어떤 형태, 어떤 수준으로 할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이날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북핵으로 인한 긴장감이 높아지지만 경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가능성이 60%로 가장 높다”며 내년 성장률은 4.3%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성급하게 경기부양에 돌입할 경우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결국 경기가 얼마나 위축될지, 그래서 어느 정도 경기부양을 해야 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줄타기를 한국 경제가 하고 있는 셈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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