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면 잠깐 골똘하게 된다. 사물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운동화를 살피며, 버릴까 말까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새 운동화를 마련한 게 두 달 전인데, 신던 운동화를 버리려니 아직 멀쩡해 보였다. 그래서 며칠만 더 신기로 했는데, 더 이상 닳지 않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미루게 됐다.
왜 맘 편히 버릴 수 있게 닳아지지 않는 거야! 내가 너무 값싼 운동화를 샀나 보다. 값이 세 배쯤 되는 메이커 운동화는 제때 낡아지던데. 아쉬울 정도로 빨리 닳았지. 하긴 어느 스포츠 기사를 (아니, 스포츠용품 기사였던가?) 보니까 나처럼 바닥이 닳은 운동화를 신고 뛰는 건 위험하단다.
안전한 운동을 위해선 아낌없이 운동화를 교체하라지. 나는 둘레가 반들반들한, 그러나 가운데 홈은 생생히 남아 있는 운동화 바닥을 들여다본다.
두 달이나 더 신었으니까 당장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해도 거리낄 건 없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나는 헌 운동화를 곱게 사물함에 넣는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이 운동화로만 1,000㎞ 가까이 뛰거나 걸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 왕복하고도 한참 남는 거리다. 대견하도다, 내 운동화여!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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