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만 쳐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습니다. 핵은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입니다.
북한 핵실험으로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있었던 피폭자와 2, 3세다.
11일 만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박영표(70) 회장은 “핵실험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습니다”라며 끔찍한 과거를 회상했다. 일본 소학교에 다니던 박씨는 원자탄이 떨어진 곳에서 불과 2㎞ 떨어진 판잣집에서 가족들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집은 순식간에 날아갔고 먼지가 세차게 휘날렸다.
눈을 떠보니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주위에는 온통 시체가 나뒹굴었다. 투하 지점과 집 사이에 언덕이 있어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살아 남은 것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이었다.
부모님은 10년 넘게 고열 고혈압 등에 시달리다 50대초에 숨졌다. 형도 평생 어지럼증을 호소하다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은 경남 합천군의 원폭피해자복지관에 머물고 있다. 박씨도 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르는 신세다.
“원폭 한 방에 20여만 명이 한번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평생을 앓다 죽어갔습니다.” 피폭자들은 고혈압 갑상선 대장암 등 각종 성인병 발병율이 일반인들보다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앓는 환자들도 부지기수다.
끔찍했던 과거를 되새기던 박씨는 번뜩 정신을 차리더니 젊은 사람들이 핵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핵을 사용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하게 됩니다. 살아 남아도 사는 게 아니죠.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세계가 핵무기를 폐기해야 합니다.”
박씨는 특히 서울이 핵 공격을 받으면 히로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클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울은 히로시마보다 훨씬 밀집돼 있고 인구도 많습니다. 핵무기의 위력은 예전보다 더 강력해지지 않았나요.”
원폭 피해자 후손들의 생활도 이에 못지않다. ‘원폭2세 환우회’ 정숙희(42) 회장은 10년 전부터 허벅지 아래 뼈가 점점 사라지는 희귀병인 ‘대퇴부 무혈성 괴사병’을 앓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부친은 1999년 폐암으로 사망했지만 원폭을 구경도 못해 본 정씨와 다운증후군을 앓는 남동생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원폭2세들의 각종 질환 발병율은 일반인보다 수십 배 높지만 유전에 따른 병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핵은 피폭자뿐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피해자를 낳는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이 잔인한 무기”라고 우리 사회의 ‘핵 불감증’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원폭2세 환우회 회원들은 13일 오후 서울 종로와 국회 앞에서 각각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는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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