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카타르 도하의 낮과 밤 풍경은 천양지차다. 일부 도심을 제외하곤 한낮의 거리는 적막감에 휩싸인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이나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관공서나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잠들어 있던 도시는 오후 5시를 넘기면서 활력을 되찾는다. 시내는 차량들로 붐비고 식당에서는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넘쳐 난다. 이 모든 게 ‘라마단(Ramadan)’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하는 라마단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이슬람 성전인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이다.
이슬람인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의무적으로 금식을 하고 하루 5번의 기도를 한다. 음식은 물론이고 물과 담배, 섹스 등이 금지된다. 카타르 항공에서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는 강세진(27)씨는 “심지어 남자들은 여성의 손도 잡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라마단 기간은 지난 9월23일 시작돼 한달 간 계속된다. 이슬람인들은 라마단이 시작되면 자신들의 생활 리듬과 습관을 철저히 바꾼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새벽 5시께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식사를 한다. 낮 시간은 거의 기도와 수면으로 보낸다.
그러나 라마단이 반드시 금욕과 고통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금식이 풀리는 저녁부터는 성찬의 파티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카타르 현지 이슬람인들은 오후 5시 금식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식당이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난 7일 저녁 6시도 안돼 도하 알-사드 거리의 대형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100석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곳에선 빈자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전날 낮에는 한식당에 들렀으나 ‘오후 5시부터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렇듯 라마단 기간동안에는 모든 게 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도하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쑥(SOUQ)은 오후 7시30분께 문을 열어 자정을 넘겨 영업을 한다. 시내 호텔들도 저마다 특색 있는 라마단 저녁 뷔페 메뉴를 내세워 프로모션에 한창이고 식당들은 새벽 2,3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한적하던 거리는 차들로 붐비고 교통 체증은 밤 늦게까지 이어진다. 카타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경기도 저녁 10시 반부터 열린다. 젊은 신세대들은 노천 카페에 모여 앉아 카드 놀이를 하거나 인터넷 카페에서 채팅을 즐긴다.
라마단이 빚어낸 흥미로운 낮과 밤의 두 얼굴이었다.
도하(카타르)=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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