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문화 지원이냐 기업 홍보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문화 지원이냐 기업 홍보냐

입력
2006.10.10 23:53
0 0

10년 전. "1억원 이상의 행사로 만드세요. 그리고 명칭도 바꾸세요.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말고 (회사명)국제컴퓨터음악제로." 당시 한국전자음악협회 회장으로서 1999년 서울 세계컴퓨터음악대회(ICMC) 개최를 세계컴퓨터음악협회로부터 제안받았던 나는 이 행사를 위해 난생 처음 남에게 돈을 간청했다.

● "대회 이름 바꾸라, 돈 더 주마"

그런데 첫 해 3,000만원만 도와달랬더니 금액이 가당찮게 작다는 것. "첫 해는 3,000만원, 다음해에는 그 2배, 98년에는 예비 세계대회 규모, 그리고 99년에 본격적으로 행사를 치르도록 계획하고 있으니 매해 역량을 키우게끔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첫 해부터 1억원 이상으로 하라니. 싫다고 했다.

왜냐 하면 우리는 꼭 3,000만원이 필요했고, 개칭은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7,000만원 덤 때문에 작곡가들은 보은 이벤트를 해야 하고, 눈치 볼 것이 자명했다. 나는 지금도 그 거절이 잘 한 일이라고 믿는다.

ICMC는 1974년 시작되어 매년 대륙을 옮겨가며 열리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음악가와 과학자들의 대회로 아시아에서는 와세다대, 홍콩과학기술대, 칭화대, 싱가폴국립대에서 열렸다.

1999년 서울 ICMC. 이는 20세기를 정리하면서 전자산업 강국으로 떠오르던 우리의 디지털 문화력을 키우고 과시할 호기였으나 무산되어 칭화대가 유치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컴퓨터음악을 비롯한 CT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교육과 연구, 창작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 가시적 성과가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을 통해 보여질 것이다. 과거 이미지의 중국이 아닌, 미래의 상징으로서.

ICMC 2006이 11월 뉴올리안즈 튜레인대에서 열린다. 재작년 마이애미에서 열렸음에도 미국에서 또 열리는 데는 ICMC 서울대회에 대한 아쉬움이 한 이유이다.

이번 대회의 회장은 박태홍 박사로, 10여년 전 필자와 처음 만났을 당시 금요일 저녁마다 홍대 앞 라이브 카페에서 베이스기타를 쳤던 국내 기업의 통신연구소 연구원이었다. 다트머스, 프린스턴대에서 컴퓨터음악과 작곡을 공부한 그는 이른 나이에 미국 컴퓨터음악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ICMC 서울대회를 염원했던 그는 카트리나의 생채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도시에서 이를 희망의 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우리 전통 소리를 사랑하는 그는 한국 악기를 포함한 작품을 세계에 공모했고, 국내 전통 연주가들을 초청했다.

● 첨단 기업들의 저급한 문화마인드

한국의 소리가 전 세계의 소리로 화할 11월 뉴올리언스 대회를 위해 그는 몇차례 서울을 방문, 대기업들의 도움을 청했지만 10년 전 나의 경험을 답습했다. 세계적 첨단 문화사업에 IT 강국 대한민국의 어떠한 기업도 도움되지 않았다.

1950년대 벨 전화연구소에서 탄생한 컴퓨터음악 발전의 뒤에는 늘 기업의 지원이 있었다. 그들은 티냄 없이 예술가들을 통해 진화하는 기술의 과실을 거두었다. 첨단 예술에 대한 지원은 최상의 실험이며 투자였지, 기업 홍보수단이 아니었다.

황성호ㆍ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