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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박원순 모델'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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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박원순 모델'의 명암

입력
2006.10.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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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박원순 변호사의 희망제작소에 7억원을 지원했고, 더 큰 돈이 드는 사업도 서로 협의한 바 있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몸바쳐온 박 변호사의 공적은 아무리 존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취지나 운영상의 어려움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재정을 주로 삼성에 기대는 연구소가 얼마큼 독립적이고 진보적일 수 있을까. 박 변호사는 재벌과의 생산적 긴장을 이야기하지만, 근년에 그의 활동에서 긴장된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벌개혁을 위해 애쓰는 김기원 방송대 교수가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 말이다. 김 교수는 칼럼 제목 그대로 '걸리버 삼성과 진보세력'의 관계에 주목했지만, 지방에 사는 나로선 좀 다른 아쉬움이 있다.

● 재벌 돈으로 시민운동 될까?

나는 박 변호사의 희망제작소에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 중의 하나다. 무엇보다도 희망제작소가 '지방ㆍ지방자치 살리기'를 제1의 과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영남권 일부를 제외하곤, 지방은 심리적 중앙종속성도 매우 강하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하면 안 될 일도 중앙에서 활약하는 유명인사가 나서면 될 수도 있다. 지방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다.

내가 사는 전라북도의 경우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전북의 지역신문 구독율은 4% 미만이다. 25가구 중 1가구꼴로 전북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역 공론장이 사실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기대하기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평소 지론이다.

지역신문을 살릴 길이 없을까? 현재로선 답이 없다. 전북 인구는 180만명도 안되는데, 일간지가 9개나 된다. 앞으로 1개가 더 생긴다고 하니 곧 10개를 돌파할 모양이다. 전북경제의 현실상 2개 일간지가 먹고 살까 말까 한데 그 지경이니 모든 신문들이 다 영세성을 면할 길이 없다.

그래서 신문에 대한 불신도 매우 높다. 불신의 악순환이라고나 할까. 지역신문 살려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 할 수 있다고 호소해봤자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다.

박 변호사의 희망제작소가 나서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재벌의 지원을 받는 모델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독립성'이나 '진보성'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다.

지금과 같은 '박원순 모델'은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지속될 수 없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박원순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건다는 건 그가 전국적 여론을 조성하고 지방의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건다는 뜻이지, 그의 이름으로 돈을 끌어오는 것에 건 기대는 아니다.

일단 재벌 돈 가져다 쓰면서 지속가능한 모델을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방이 어렵고 지방자치가 부실한 건 고급인력의 아이디어나 정책 부재 때문이 아니다. 지방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냉소와 불신의 소용돌이'가 훨씬 더 큰 문제다.

● 지방민 냉소와 불신 해소부터

돈 없이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를 할 수 없는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소액 기부금을 광범위하게 얻어낼 수 있을지, 그걸 고민해 성공시키는 게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국에 확산시킬 수 있는 일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돈은 지방에서 모아야 한다. 서민의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한 장씩 내놓게 하는 게 진짜 참여요 진짜 개혁이다. 그 돈을 내놓게 하기까지 쏟아야 할 피와 땀은 엄청나겠지만, 그게 이루어지면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민단체나 진보적 연구소가 재벌 돈을 받는 것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지만, 박원순이라는 귀한 이름이 그런 일에 쓰이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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