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한바탕 추석 귀성 열병을 치렀다. 긴 연휴라 예년에 비해 도로 위에 갇힌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국민들의 가슴은 무겁기 그지없다. 그렇지 않아도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살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에 추석을 맞아도 그다지 편치 않은 심정이었는데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의 후유증이 이 정도로 끝났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우울한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해왔던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 유령도시 될 혁신ㆍ기업도시
북한의 핵실험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복잡다단할 것이다. 관련국들의 이해득실과 동북아의 질서 변화, 우리나라가 처할 위기상황 등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몰고 올 대내외 파장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문가들 몫이고 보통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핵실험 충격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우리 경제의 엔진이 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달픈 보통 시민들에게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매년 고향을 찾는다는 한 중소기업인은 고향을 다녀와서 분통을 터뜨렸다. 고향에 혁신도시가 들어선다고 해서 가능하면 고향에서 기업활동을 할 생각으로 혁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을 답사해봤더니 기가 차더라고 했다. 내년에 착공 예정이라는데 혁신도시 부지는 허허벌판에 가건물이 몇 채 들어서 있을 뿐 아무것도 진척된 것이 없었다.
수도권의 공기업과 연구기관이 계획대로 모두 이전해도 직원수가 3,000여 명을 간신히 넘을 수준이고 기존도시의 인구 역시 줄어드는 추세라 인구 2만~3만 명의 혁신도시 건설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수도권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버린 땅값은 그를 절망케 했다.
그는 땅값마저 수도권과 다름없다면 기반시설, 물류, 인력 등의 취약점을 감내하며 혁신도시로 공장을 이전할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문제는 정부가 확정한 10개 혁신도시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인구를 확보하고 기업을 유치할 구체적인 방안 없이 청사진 속에서만 혁신도시 건설이 추진되는 꼴이다. 한 담당 공무원은 "이러다간 혁신도시가 유령도시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중단할 수도, 추진할 수도 없는 난감한 심정을 털어놓더라고 전했다.
기업이 땅을 사들여 직접 개발하는 기업도시 역시 난관에 봉착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전경련 제안으로 정부가 참여기업에 각종 특혜를 부여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만들어 원주 충주 태안 무주 무안 해남ㆍ영암 등 6곳을 기업도시로 선정했으나 난항이라고 한다.
수도권 기업들을 유치해 지역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막상 추진해보니 곳곳에 규제의 지뢰밭이 깔려 있는 데다 주변 땅값이 뛰어 부작용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입주를 포기하는 등 기업유치 자체가 벽에 부딪혔다. 땅값은 이미 대도시 못지않게 올랐고 그렇다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규제 투성이 제도가 정비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꺼져가는 엔진에 덮친 북핵
많은 사람들이 귀성길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수도권 신도시 개발 등 정부와 지자체가 요란하게 추진해온 각종 개발사업들이 오히려 투기열풍만 확산시켜 순박한 사람들까지 헛바람 들게 한 씁쓸한 현실을 확인해야 했다. 지역 균형발전이야 백번 옳은 얘기지만 경제 엔진이 꺼져가는 마당에 기업이 외면하는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건설에 매달리는 까닭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리 경제가 이 정도의 충격은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소비ㆍ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몸을 사릴 것은 불문가지다. 사태 악화로 자본이탈과 기업들의 해외이전이 뒤따른다면 우리 경제는 매달릴 곳이 없다. 이래도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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