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목숨 걸고 하는거예요.”
24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발레 ‘카르멘’에 출연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28)의 각오는 비장했다.
‘카르멘’은 대머리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지젤’ 등 독특한 작품을 선보여온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마츠 에크가 만든 현대 발레. 발레의 상징인 토슈즈 대신 매캐한 시가 연기와 뒹굴고 구르고 뺨을 때리는 파격적인 동작들이 무대를 메운다. 클래식 발레를 주로 해온 국립발레단으로서도, 올해 무용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한 김주원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시가를 입에 물고 호세를 유혹하는 퇴폐적인 카르멘으로 분하는 김주원은 하필이면 만성 기관지염 환자. 폐 기능까지 좋지 않아 평소 담배 연기도 맡지 못한다. 한데 춤을 추는 가쁜 호흡 속에서 독한 시가를 피워야 하는 것이다. 결국 얼마 전 연습을 끝내고 집에 가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목숨을 걸고 한다는 소리가 결코 엄살만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김주원은 “처음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는데 이제는 옷에 몸이 적응한 것 같다”면서 “시가의 향이 조금씩 느껴진다”며 웃었다.
공연 전체를 토슈즈 없이 하는 것이 처음인 김주원은 요즘 토슈즈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토슈즈를 신는 것이 밥을 먹거나 숨을 쉬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카르멘’은 기존의 발레와는 움직임 자체가 달라요. 발레보다는 현대 무용에 가깝다고 할까요. 지금껏 노력해서 만든 동작들이 여기서는 잘못된 것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마담 M 역할까지 함께 맡아 역할을 바꿔가며 출연한다. 에너지를 그대로 분출하는 카르멘과 극도의 절제가 요구되는 마담 M은 전혀 다른 캐릭터라 연습 도중 감정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김주원은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지만 이 작품을 끝내면 한 단계 성숙할 것 같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이 달에는 ‘카르멘’ 외에도 강수진이 소속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14,15일 성남아트센터), 유니버설 발레단의 ‘컨템포러리 발레의 밤Ⅴ’(21,2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등 발레 공연이 많다. 특히 한국 발레가 낳은 두 스타 강수진, 김주원의 잇단 무대에 관심이 높다. 혹시 경쟁심이 들지는 않냐고 물었다. “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앞서 있는 분이죠. 비슷한 시기에 발레 공연이 많아 걱정이라는 분들도 있는데 좋은 공연이 많아야 발레 관객도 늘어날 거라 생각해요. 저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꼭 보러 갈 거예요.”
이번 공연에는 김주원 외에 영화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 발레리나 구사카리 다미요, 국립발레단 캐릭터 솔리스트 노보연이 번갈아 카르멘으로 출연하며 장운규와 이원철이 호세 역을 맡는다. (02) 587-6181
사진 홍인기기자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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