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9세에서 24세 연령대의 여성들 중에서 명품을 좋아하는 소비 감각을 갖춘,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력을 남성에게 의존하게 되는, 아주 영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인터넷 상에서 이 말에 대해 검색해 보면, “외국 고급 명품이나 문화를 좇아 허영심이 가득한 삶으로 일관하여 한국 여성으로서의 자질이나 정체성, 자부심을 잃은 여성”을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왜곡된 설명들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민족주의 담론에 기대고 있어서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계급이라든가 젠더(gender)와 같은 사회적 실체에 조응하는 계급의식 내지는 사회심리적 표상이 왜곡되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된장녀를 찾기란 힘들다는 게 마케팅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젊은 여성 대부분은 평소에는 주로 쿠폰을 이용하는 등 아끼며 살다가 쓸 때는 팍팍 쓴다는 것이다. 된장녀 식의 어법에 기대어 말한다면, 대부분의 젊은 한국 여성은 본디 ‘쌈장녀’이며, 누구든 가끔은 ‘된장녀’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돈 많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젊은 남성들은 ‘된장녀’ 혹은 ‘쌈장녀’로 표상되는 여성들과 사귀거나 결혼을 하기 위해 ‘고추장남’으로 살아간다. 즉, 경제력이 없는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은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성이 되기 위해 고시원이나 도서관에서 밤낮으로 각종 고시 공부와 취직 공부를 하는 탓에 결국 자기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추장남이 늘 트레이닝복 차림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된장녀 혹은 고추장남이 상기시키는 신화적 인물로 한국 고대 신화에 웅녀(熊女)가 있다. ‘삼국유사’ 등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되기를 고대하던 곰은 신(神)이 준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견디어내고 또 삼칠일(三七日) 동안 몸을 삼가서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또, 웅녀는 자기와 혼인할 사람을 찾아 헤맨 끝에 환웅과 결혼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웅녀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오늘날에는 남녀 관계의 서사적 역할이 역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추장남과 웅녀의 공통점은, 결혼에 초점이 맞추어진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스런 상황을 감내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 신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된장녀도 웅녀를 닮았다.
이재현(이하 현) 안녕, 된장녀야.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려고 만나자고 했다.
된장녀 하이, 현. 나이스 투 미트 유. 나, 오늘 신문에 얼굴 나간다고 해서 신경 좀 쓰고 나왔는데 어때? ‘간지’나는 것처럼 보이니?
현 간지란 말은 감각, 느낌, 분위기, 인상 등을 뜻하는 일본말이지? 예전에는 십대들 은어로 ‘뽀대난다’란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 광고 문구에서도 흔히 ‘간지 삘이 온다’ ‘간지 난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더구나. 굳이 풀어 말하면 일본풍의 첨단 패션 감각이 느껴진다는 뜻이라던데…. 하지만, 된장녀라면 된장녀답게 쉭(chic)하다든지 아니면 그냥 쿨(cool)하다고 하는 게 네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 브랜드하고도 어울리는 거 아니겠니?
된장녀 너 그딴 식으로 ‘구리게’ 말하는 거 보니까 ‘쉰 세대’에다가 고추장남이 분명하구나. 우리, 인터뷰는 그냥 짧게 끝내자.
현 (움찔) 아니, 잠깐만.
된장녀 일본 패션산업이나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은 뉴욕이나 밀라노에 결코 뒤지지 않아. 그리고 도쿄에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아이템이라면 일주일이나 열흘 이내에 동대문 쇼핑몰에서 그걸 본뜬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어.
현 그렇구나. 그럼, 단군 얘기나 해보자.
된장녀 으음, 그러니까, 단군은 한마디로 튀기야. 천신을 믿는 부족하고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 사이에 정치적으로 중대한 혼인 관계가 맺어져서 단군이 태어났다는 얘기 아니겠니? 인터뷰 주제가 단군 신화라고 해서 미리 인터넷 지식 검색을 해봤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단군 신화는 웅녀로 대표되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환웅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 문화’의 결합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하더구나. 수능 땜에 공부하긴 했는데, 빗살무늬니 민무늬니 하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말야.
현 그러면 우리 한반도 사람들은 모두 튀기의 자손이구나. 별로 내세울 게 못 되네. 아무튼 하인스 워드나 인순이야말로 가장 단군의 후손답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된장녀 단군 신화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결국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에게 승리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던데. 곰 신화는 시베리아에서부터 북부 아메리카 선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 원주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대. 그러니까, 딱히 옛날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만의 신화는 아닌 거지.
현 으음, 요즘 신세대는 아는 것도 많구나. 학력 저하 운운하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기우에 불과한 거네. 오늘날은 워낙 지식의 양이 엄청난 거니까 공교육 수준과 범위의 지식만을 가지고 학력을 따지는 게 결국 우스운 얘기가 되는 거네.
된장녀 우리 신세대라고 해서 너희 쉰 세대하고 크게 다른 건 없어. ‘된장’이 끌어당기는 힘과 ‘간지’가 끌어당기는 힘 사이에 놓여 있어서 동요하고 있는 것일 뿐이야. 반면에, 너희 세대는 소위 ‘삼강오륜’ ‘사회 기강’ ‘멸사봉공’ ‘봉제사 접빈객’ 따위의 말로 표현된 전근대적이거나 반(半)봉건적인 습속 내지는 이데올로기가 끌어당기는 힘과 학교에서 배운 합리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일종의 관념적 박래품이 끌어당기는 힘 사이에 놓여서 계속 흔들려왔던 것뿐이잖니. 그래도 너희 덕분에 눈부신 경제성장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룬 덕에 우리가 놀고먹고 공부하는 거지.
현 그래. 사실, 된장, 쌈장, 고추장이란 게 다 양면이 있는 거지 뭐. 4,000원 짜리 된장찌개를 먹을 때도 있는 거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레스토랑에서 두세 배 돈을 주고서 간만에 보리밥과 쌈장 정식을 깔끔하게 즐길 때도 있는 거야. 그래도 된장이나 쌈장은 집에서 먹는 가정식 백반이 최고야. 난 한 끼에 최소 몇 만원씩 하는 한식 레스토랑에서는 ‘토쏠려서’(토할 것 같아서) 제대로 먹지를 못해. 근데, 너 단군 신화를 믿니?
된장녀 신화는 신화에 불과한 건데, 그걸 왜 믿어야 하니? 단군 신화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세력들이 한반도로 서세동점 하는 상황에서 발견되고 재조명된 거야. 신화란 기본적으로 이야기잖아. 종교 교리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믿고 말 게 아니지. 이야기는 듣거나 보고 즐기는 거야. 소설이나 영화, 혹은 TV드라마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야.
현 그럼, 우리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도 결국 일종의 ‘구라’인 거니?
된장녀 ‘당근’이지. 그건 수학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야. 6,000만명 모두가 한 명의 후손이라는 얘기는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거야. 일본의 천황제 신화에서 떠드는 ‘만세일계’ 만큼이나 엉터리인 거지. 한일 양국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얘기는 다 허구야. 양쪽 다,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신화를 가져다가 포장한 거라구.
현 그러고 보니 너는 사실 쌈장녀구나. 패션 감각만 뛰어난 게 아니라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네.
된장녀 우리를 된장녀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로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 사이의 마초 남성들이야. 본디, 소비의 양극화 문제는 계급적 문제인데, 이것을 왜곡해서 억지로 젠더, 그러니까 사회ㆍ문화적 성의 문제로 바꿔치기 하는 거잖니? 게다가, 민족주의를 동원해서 공격하는 것에 불과해.
현 된장녀, 쌈장녀 하는 말 말고 ‘귀족녀’라는 말도 있다던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된장녀 귀족녀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힐튼호텔 상속녀인 패리스 힐튼 같은 애들은 아직 한국에 없다고 해야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놀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띄지는 않더구나.
패리스 힐튼에 비교하면 한국의 재벌 아들 딸이라고 해보았자 별 거 아닌 거겠지. 다만, 보통사람들에 비해서 소비수준이 극단적으로 높은 부유층 출신이 있다는 거는 사실일 거야. 대개 외국 유학을 갔다와서 영어도 잘하고 그에 걸맞게 고도의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걔네들 엄마가 예쁠 테니까 기본으로 ‘한 미모’ 하는 거고 또 영 안되면 성형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요즘 여성은 패션‘빨’ 화장‘빨’이 받쳐주는 거니까 누가 봐도 미인으로 보이는 거지 뭐.
현 된장녀와 귀족녀를 놓고 봐도,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라는 얘기는 정말 이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거네. 정치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사회적, 계급적 갈등을 은폐하고 억압하는 역할만 하는 거잖니.
된장녀 너라면 귀족녀와 된장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굴 선택하겠니?
현 나야 당연히 된장녀지. 된장녀는 쌈장녀고 고추장남도 쌈장남이니까. 나는 내 계급이 편하단다. 어, 시간이 다 되었구나. 그럼 안녕. 담에 만나면 제대로 한번 ‘쏠게’.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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