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고향을 다녀온 한 친구는 마을마다 낯선 외국인 며느리들이 적지 않은 사실에 매우 놀랐다는 말을 했다. 통계 상으로도 이미 농촌에는 네 집 건너 한 집에 외국인며느리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직접 보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2000년 7,300쌍에 불과하던 국제결혼은 2003년 1만 9,000쌍, 지난해에는 3만 1,000건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가정의 아이들도 그만큼 늘어나 조만간 농촌아동 4명중 한 명 꼴이 될 전망이다. 농촌은 어느새 중국 베트남 필리핀인 며느리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사는 다민족사회로 바뀌었다.
▦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은 김해 가야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인도 공주 허황옥(許黃玉)의 혼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알에서 태어나 가야국을 세운 수로왕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는다. 그녀가 정말 인도인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남방 해양세력을 상징하는 외국인은 분명해 보인다.
두 사람은 아들 10명을 두었는데 둘째, 셋째가 어머니 성을 따라 오늘날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국내 275개 성씨 가운데 136개는 이런 귀화성씨라고 하니 단일 민족이라는 표현도 정확하다고 하기 어렵다.
▦ 개천절과 추석을 통해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며 한 핏줄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규정했다.
국내에서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도발적 제목의 저서를 통해 민족주의에 감춰진 폐쇄성과 권력지향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배타적 민족주의보다 민주주의, 인권, 평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상위에 두자는 논리다.
▦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 명을 넘고, 국제결혼이 13%를 넘어선 다민족 환경에서 닫힌 배타적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열린 포용적 민족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은 지극히 옳다.
일본 '재계의 총리'라 불리는 오쿠다 히로시(73) 전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은 일본이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거부감, 즉 '마음의 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최근 경고했다. 외국인 며느리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국제화를 앞당기고 문화적 다양성을 풍성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자 민족의 일원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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