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가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를 고집함으로써 중단되었던 한일 정상회담이 아베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 11개월 만에 재개된다.
한국에서는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 침략을 주도했던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참배는 전쟁 책임의 회피라고 간주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면 또 다시 주변국을 침략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주 국회에서 전쟁 책임을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베가 전후에 태어난 52세의 보기 드문 젊은 총리임에도 불구하고 전전의 군국주의적 사고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고 보편적 사고에서 벗어난 역사 인식과 대북 강경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663년의 백촌강싸움, 1592년의 임진왜란, 1894년의 청일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중국과 벌이고 있는 아시아세계에서의 패권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아베 총리는 전쟁 책임과 미래 아시아 각국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태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고 노 대통령은 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군사대국을 지향함으로써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고 동북아시아를 군비 경쟁과 긴장의 도가니로 몰고 갈 것인가, 아니면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아시아 각국과의 협력을 통해서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제이다.
아베 총리를 위해서나 일본을 위해서나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일본이 불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변국들과 더불어 공동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노 대통령도 독도 문제나 역사인식 문제 등에 있어서 국민감정만 부추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이 단기부채를 연장해주지 않아서 환란이 가속화되었다’고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환란 답변서에서 명백히 나타났듯이 한국이 수출을 하면 할수록 대일적자가 늘어나는 경제적인 대일 종속관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중국과 일본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서 외교적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도 논의의 대상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 역시도 이를 군사대국화의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한일 간에는 하루 평균 1만명의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활발한 양국간의 교류가 정치인들의 시대착오적인 역사 인식과 편견, 아집으로 손상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김현구ㆍ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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