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박찬호(33)는 시즌 최종전인 지난 1일(한국시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방문경기에서 등판 기회를 갖지 못했다.
포스트시즌 25인 엔트리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박찬호는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 기념 셔츠와 모자에 일일이 동료들의 사인을 받으러 다녔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이별해야 할지 모르는 선수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한 것이다.
그러나 박찬호의 예상은 기우에 불과했다. 케빈 타워스 단장은 대런 발슬리 투수코치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4일 세인트루이스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앞서 전격적으로 박찬호를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타워스 단장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찬호가 제 몫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특히 경기가 길어지면 긴 이닝을 소화해줄 투수가 절실하다”고 박찬호를 발탁한 배경을 설명했다.
브루스 보치 감독이 앞서 밝힌 대로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박찬호의 노련한 경험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박찬호가 꿈에 그리던 가을잔치 무대에 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가 아니어도 좋았다. 지난 94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13년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포스트시즌 마운드이었기에 감회는 남달랐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인 지난 96년에는 디비전시리즈 25인 엔트리에 들었으나 벤치에서 팀이 애틀랜타에 3연패하는 것을 지켜봤고, 지난해에는 아예 출전 선수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팀이 1-5로 크게 뒤진 8회초 등판했지만 박찬호는 깔끔한 호투로 제 몫을 100% 해냈다. 2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 막으며 ‘포스트시즌 신고식’을 훌륭하게 치러낸 것이다.
박찬호는 경기 후 “4회부터 준비를 했는데 더 점수를 내주면 경기를 완전히 포기할 것 같아서 조금은 부담이 됐다”며 “플레이오프에서 꼭 던져보고 싶었는데 기쁘다. 팀이 앞으로 이겨서 또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1-5로 패한 샌디에이고는 6일 2차전에 베테랑 좌완 데이비드 웰스를 선발로 내세워 반격을 노린다.
한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는 뉴욕 양키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나란히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양키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8-4, 오클랜드는 미네소타 트윈스를 3-2로 꺾었다. 올시즌 박찬호의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공동 다승왕(19승)에 오른 양키스의 대만 출신 왕첸밍은 6과3분의2이닝 8피안타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로 포스트시즌 첫 승을 거뒀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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