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실험'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미 7월에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부터 예견되었던 수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충격은 결코 적지 않다. 한반도 정세는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남북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위기를 헤쳐나가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이런 길밖에는 없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현지 조사를 위해 며칠 동안 머물렀던 쿠바의 사례가 새삼 떠오른다.
● 북한 핵실험 카드의 충격
쿠바 경제는 1960년대 카스트로 정권 수립 이후 옛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대외무역에 의존해 경제를 꾸려나가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대외의존도가 큰 상태에서 구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쿠바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따라서 쿠바는 경제위기를 겪게 되는데 쿠바인들은 1989~93년을 '특별한 시기(special period)'로 부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쿠바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불과 5년 만에 경제 규모가 40%나 축소되게 된다. 뿐만 아니다. 국가 배급체계 동요, 암시장 창궐, 암시장 물가 및 환율 급등, 국가재정 악화 등의 심각한 사태가 초래되었다.
북한도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그 유명한 '고난의 행군'시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 그 자체는 쿠바와 북한이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하지만 그 후의 사태 전개에서 핵심적인 것은 경제위기에 대한 국가의 대응방식의 차이다.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기존의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경제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게다가 북한은 시장경제활동에 대해 억압 일변도의 정책을 폈다. 자영업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쿠바는 달랐다. 1993년부터 대대적인 경제개혁을 실시한다. 그 골자는 달러 사용의 합법화, 농업의 외자 합작, 노동 인센티브 확대, 외자기업 인정, 수출입자유지대 설치 등이다. 특히 자영업과 자유시장을 광범위한 영역에서 허용하면서 사적 경제활동을 제도내로 끌어들였다. 반면 사적 고용은 극력 억제했다.
이러한 정책상의 차이가 경제성과의 차이를 초래했다. 쿠바는 경제개혁적 정책을 전개하면서부터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큰 것은 시장화의 양상과 성격의 차이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쿠바는 관리 가능한 시장화이고, 북한은 관리가 어려운 시장화이다. 물론 상대적인 의미에서이다.
쿠바는 계획경제 부문과 시장경제 부문의 동거가 다소 안정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장의 존재가 체제의 결정적인 위협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동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향후 시장의 존재가 체제의 결정적인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조차 엿보인다.
● 쿠바의 유연함 배웠으면
북한과 쿠바. 두 나라는 얼핏 보면 너무나 유사하다. 체제 전환을 하지 않고 원형에 가까운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생각보다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북한 지도부는 시대와 세상의 흐름에 둔감하다. 절충과 타협을 모른다. 반면 쿠바 지도부는 영악하리만치 변신에 능하다. 경직된 북한과 유연한 쿠바. 북한의 핵실험 선언 소식을 접한 이후 이 말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양문수ㆍ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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