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말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역사적 방문을 앞두고 있는 터키에서 교황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한 여객기 납치 사건이 발생해 터키 정부와 로마 교황청에 초비상이 걸렸다.
이번 여객기 납치를 계기로 이슬람 국가인 터키 국민들의 교황 및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면서 교황청이 추진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간 대화가 예정대로 추진될 지도 불투명해졌다.
3일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를 출발해 터키 이스탄불로 향하던 터키항공 소속 보잉 737_400 여객기가 그리스 상공에서 납치된 뒤 이탈리아 브린디시 공항에 강제 착륙했다. 승객과 승무원 113명은 모두 무사히 여객기를 빠져나왔고, 납치범은 착륙 2시간 만에 자수했다.
사건 발생 당시 터키 언론들은 납치범이 교황의 터키 방문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나중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4일 여객기 납치는 27세의 기독교로 개종한 터키 육군 탈영병의 단독 범행이었으며 범인은 무장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납치범은 터키 당국의 체포를 피해 5월 알바니아로 도주해 망명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고, 터키로 이송되는 중이었다. 납치범은 교황에게 터키 군대 복무를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위 이후 이슬람 국가로는 처음인 교황의 터키 방문은 무슬림의 반(反)기독교 정서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극히 미묘하다. 이슬람의 지하드를 비하하는 3주 전 교황의 독일 발언은 교황청의 잇단 사과와 이슬람 지도자들의 수용 입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 사이에 여전히 극도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터키 언론에서는 “교황은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연일 내보내고 있다. 5월에는 공교롭게도 ‘교황의 암살’이란 소설까지 출간돼 분위기는 더욱 흉흉하다.
베네딕토 16세의 터키 방문은 종교 간 화해와 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5,000여명의 터키 내 소수 그리스정교 신자들에 대한 권익 보호 등 터키 내부의 현안은 종교 문제를 정치적인 것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세속국가의 정치 지도자지만 종교적 영향력도 막강한 것으로 알려진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최근 이스탄불에서 열린 경제회의에서 교황을 “이 사람”으로 지칭하며 “그는 심지어 정치인에게도 적절치 않은 화법으로 말을 한다”고 극도의 반감을 표시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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