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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CSI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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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의 미디어 비평] CSI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

입력
2006.10.0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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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외화 시리즈 'CSI'가 케이블 채널 OCN에서 10월 1일 밤 12시부터 24시간 동안 연속으로 방영되었다. 이름하여 'CSI: Day 2'. 올해 추석 특집으로 마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띄는 편성인 동시에,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지형을 가늠케 해주는 의미심장한 '미디어 이벤트'다.

'CSI: Day 2'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펼쳐지는 오리지널 'CSI' 시리즈는 물론 스핀오프(spin-off) 시리즈인 'CSI 마이애미'와 'CSI 뉴욕'에서 추려낸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CSI 마이애미'와 'CSI 뉴욕'의 수사관들이 함께 출연하는 크로스오버 에피소드를 보여주는가 하면, 중간중간에 각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들을 비교 분석하는 꼭지도 배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 시리즈에 출연했던 연기자가 어떻게 다른 시리즈에 또 다른 역할로 출연했는지도 보여준다.

말하자면 'CSI: Day 2'는 세 개의 각기 다른 시리즈를 관통하며 작동하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등, 'CSI' 시리즈를 읽어내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접근방법을 알려준다.

즉 'CSI: Day 2'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만들어낸 'CSI' 시리즈라는 글로벌 프로그램을 질료로 삼아, 한국이라는 로컬의 영역에서 OCN 제작진이 새로운 방식으로 빚어낸 일종의 '하이브리드 텍스트'이자 해설서인 셈이다.

미국발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이종격투기에 대한 환호를 넘어, 이제 한국의 문화 생산자와 수용자들은 이렇게 미국산 텔레비전 텍스트를 재료로 삼아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해내고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이러한 새로운 문화현상이 시사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차분하게 짚어볼 시점이다.

우선 최근 몇 년 사이의 추이를 살펴보면, 우리가 "아시아 각국을 강타한 한국의 대중문화" 운운하며 한류의 성공에 도취해 있는 사이에, 우리의 텔레비전 전경 속에서 소위 '외화 시리즈'들의 비중과 인기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수입된 각종 프로그램들이 케이블TV의 주요 시간대를 완벽하게 장악한 데 이어 지상파 TV의 심야 시간대까지 밀고 들어오는 양상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러다가 미국산 드라마와 수사물들이 완벽하게 지배했던 한국의 '초기 텔레비전'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어느덧 질적ㆍ양적으로 다양한 외화 시리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사용하는 젊은 시청자 층이 두껍게 형성된 것이 한 몫을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방영되면서 외화 시리즈 붐을 일으킨 '섹스 앤 시티', '앨리 맥빌', '프렌즈', 그리고 최근의 'CSI' 시리즈와 '위기의 주부들'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우리는 낯선 미국의 도시ㆍ교외문화, 소비문화, 청년문화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프로그램들은 글로벌한 차원에서 동시대인들이-예를 들면 뉴욕의 젊은 여성들과 서울의 젊은 여성들이-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구조'를 접할 수 있게 해주며, 또 세대와 성차 등에 상관없이 다양한 수용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특징이 있다.

즉 각 프로그램마다 싱글 여성에겐 싱글 여성 나름대로 이 미디어 텍스트를 소비할 수 있는 근거가, 결혼한 주부에게는 결혼한 주부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진다.

한국의 드라마가 트렌디 드라마건, 멜로드라마건, 역사드라마건 할 것 없이 전형성에 매몰되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하거나 비현실적인 사건전개를 함으로써 비판 받는 것과 명징하게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 외에도 외화 시리즈가 번성하게 된 데에는 일정 부분 경제적, 상업적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청 경험이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시청 경험은 한 개인이 생애를 통해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을 형성하고 키워나가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외화 시리즈에 대한 젊은 시청자들의 몰입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문화적 자본의 축적을 낳고 또 새로운 '취향 문화'(taste culture)의 형성에 기여할지 주목된다.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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