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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최사장 '추석자금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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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최사장 '추석자금 구하기'

입력
2006.10.0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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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건축자재인 평철(平鐵)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H사 사장 최모(48)씨. 그는 최근 보름 동안의 ‘돈 구하기 대장정’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추석을 맞아 22명 직원에게 줄 상여금과 때마침 겹친 원자재 구입자금 수요로 어느 때보다 현금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최 사장은 주거래 은행을 찾았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대출 담당자에게 긴박한 사정을 설명하고 추가대출을 부탁했지만 단번에 거절 당했다. 담당자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현재 대출규모(약 16억원)로는 추가 대출이 어렵다. 추가로 담보를 제공하거나 기존 대출을 갚으라”고 했다. 최 사장은 “상환능력이 전혀 안 되는 부실업체도 아닌데 갈수록 대출을 인정해주는 여력이 줄어든다”며 “예전엔 인간적인 신뢰관계로도 그나마 여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점장도 고개를 숙이기만 할 뿐”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다음날 다른 거래은행을 찾았다. 살고 있는 단독주택이라도 담보로 잡아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은행 직원은 오히려 “담보인정 비율이 낮은 단독주택을 잡혔다가 괜히 날리지 말고 차라리 놔두라”고 충고했다. 최 사장은 결국 나머지 2개 거래은행에는 문의조차 포기한 채 알고 지내던 사채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사채업자가 특별히 깎아준다며 부른 이자는 월 5%. 100만원을 빌리면 1년에 이자로만 60만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에 결국 이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요즘은 고리에 담보까지 요구하는 사채업자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최 사장은 외상으로 나간 판매대금을 최대한 조기 회수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나마 갖고 있던 어음을 할인해 채우기로 했다. 어음 할인도 월 3~4% 이자를 떼는 사채업자는 이용할 꿈도 못 꿨고 주거래은행을 찾아가 “일반 담보대출 금리로 해달라”고 사정했다. 이번에도 은행 직원은 “내부감사 때문에 그렇게는 못 준다”라며 정색을 했고 통사정 끝에 그나마 월 0.7~0.8% 정도로 할인 받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최 사장은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50~60%씩, 모두 2,000만원의 추석 보너스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1년 내내 돈 구할 걱정에 남은 건 만성 두통과 소화불량 뿐입니다. 올 초부터는 사업을 접을까 수없이 고민도 하지만 대출금 8억원 때문에 이도 저도 어렵습니다.”

최 사장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게 사실상 극소수의 우량기업만 대상으로 하는 ‘추석자금 특별대출’은 먼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기술 담보 신용대출’이나 ‘중소기업 추석자금 특별지원’이라는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호언이 일선 현장에서는 공허하게만 들린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중순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612개 중소업체를 대상으로 추석자금 수요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 이상(52.6%)이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고, 3 곳 가운데 1곳(35.1%)은 “금융기관 대출이나 보증이 안 되는 것”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추석에 필요한 자금은 업체 당 평균 1억7,500만원이었지만 4,600만원 정도가 부족했고 부족자금은 납품대금 조기회수(33.1%), 결제대금 지급연기(27.8%), 금융기관 차입(15.1%) 등으로 해결했지만 사채를 이용(6.0%)하거나 아예 대책이 없다(10.7%)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이유로는 추가담보 요구, 대출한도 축소, 신규대출 기피, 대출연장 곤란, 담보인정비율 하향, 재무정보 불신 등이 꼽혔다. 서울 성수동에서 블라인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백모 사장은 “겉으로는 신용대출을 외치지만 막상 은행을 찾아가면 매출이나 자본금 같이 덩치 큰 수치를 먼저 따지고 결국 담보를 요구하기 일쑤”라며 “이번 추석에는 아예 대출 시도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은행의 대출채권 중 담보대출 비중은 1998년 36.9%에서 지난해 6월말 48.7%까지 높아진 반면, 신용대출 비중은 51.2%에서 43.2%로 떨어졌다. ‘전당포식 영업’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얘기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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