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1945년 유엔 창설 후 60여년 동안의 역대 총장 중 가장 어려운 과업을 떠맡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유엔이 현재 처한 상황은 2차 대전 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했던 당시와는 판이하다. 세계질서의 근간이었던 냉전이 종식됐고,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했던 선진국에 대항하는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여기에다 유엔 자체의 비효율성과 관료주의화가 팽배하면서 내부 개혁도 절실하다. 유엔이 21세기의 달라진 국제환경에 맞춰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총장에게는 국제분쟁의 조정자를 넘어 유엔 내부를 추스를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전 세계가 차기 총장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쏟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의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차기 총장의 역할을 '세속적인 교황형'과 '관리자형'으로 구분하면서 "코피 아난 총장에 대한 비판론자와 지지자들 대부분이 관리자형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국제정치에서 이념이 사라지면서 자국 이기주의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리는 것이 현실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서남아 등에서의 지역분쟁은 나날이 격화하고 있고, 종교와 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PKO)은 인종학살을 방지하는데 실패하는 등 실효성에 의문시되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 방지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의 정보 격차로 인한 국가별 빈부격차도 커지고 있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반대로 교토의정서가 표류하는 등 환경문제도 국제사회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유엔 내부 개혁은 발등의 불이다. 45년 유엔 창설 시 45개국에 불과했던 회원국은 191개국으로 늘어난 반면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밀실에서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안보리는 거부권을 등에 업은 상임이사국의 횡포로 대륙별 대표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 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유엔 사무국은 수십년 동안 쌓인 비효율적인 관료주의로 내부 개혁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아난 총장이 지난해 전격적으로 추진한 사무국 개혁 방안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관계로 진척을 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차기 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라고 할 만하다. 반 장관은 당장 총장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친미적'이라는 이미지와 '중립'이란 측면에서 북한 핵문제에 늘 붙어다니던 의혹의 꼬리표를 떼야 한다.
반 장관이 2일 "유엔 사무국 개혁을 비롯해 전반적인 유엔 내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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