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두고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낮의 더위는 여전히 기승이지만 한 줄기 바람이나 그늘이 주는 서늘함은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기상청 기준에 따르면 단풍 시작일은 산 전체의 20% 가량이 물들었을 때, 절정일은 80% 정도 물들었을 때를 말한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1주일 정도 이른 설악산 단풍을 시작으로, 단풍의 남하가 본격화하면서 전국의 산야가 색채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9월 중순 이후 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커 단풍 색깔이 한층 아름답다고 한다.
■ 단풍은 가을이 되어 잎의 생육활동 저하로 수분과 영양분 공급이 둔화되면서 엽록소가 왕성하게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잎 속의 엽록소가 햇볕에 노출돼 파괴되고 대신 엽록소에 가려 있던 다른 색소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은행나무와 같은 노란 단풍이 드는 나뭇잎은 카로틴과 크산토필 등 노란 색소 때문이고, 참나무 느티나무 등 갈색이나 황금 빛을 띠는 단풍은 카로틴 외에 타닌이라는 갈색 색소가 있기 때문이다. 붉은 색 단풍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인데 푸른 잎일 때는 없다가 새로 합성되는 것이란다.
■ 최근엔 단풍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독성 물질들의 화학전쟁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뉴욕 콜게이트 대학의 연구진은 단풍나무를 비롯해 가을에 붉게 물드는 나무들은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독을 분비하는 `타감작용'(allelopathy)을 진행 중이며 이 독은 다른 종을 죽일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남아 있는 색소가 공기에 노출될 때 화려한 단풍 색깔이 드러난다는 게 기존 학설이었는데, 이 연구팀은 빨간 색을 내는 나무들은 다른 과정을 통해 빨간 잎을 만든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낸 것이다.
■ 연구진은 ‘가을에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면 안토시아닌 성분이 흘러나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아 이듬해 봄에 어린 단풍 묘목들만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흑호두와 밤나무가 세력권 보호를 위해 독성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풍나무도 이런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처음 밝혀진 것이다. 플라타너스 유칼리나무 팽나무도 독성으로 경쟁자를 물리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엽록소의 파괴든 독성물질의 분비든 아름다운 단풍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몸부림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