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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나는 "대통령감" 아니다

입력
2006.10.0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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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순으로 보자. 강금실 강삼재 고건 권영길 김근태 노회찬 박근혜 박원순 박 진 손학규 심대평 원희룡 유시민 이명박 이수성 이인제 이해찬 정동영 정몽준 정운찬 진대제 천정배 추미애 한화갑 홍준표. 내년 대통령선거와 함께 거론되는 인사들을 간추려 보니 25명이다.

● 국민 즐겁게 해줄 일 따로 있다

출마선언을 한 사람에서부터 남이 언급하는 인사에 이르기까지 망라했다. 현 정권의 충복으로 청와대 주변을 배회하는 분, 정파나 세력의 간판이어서 자동으로 올라온 분,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상황이 바뀔 것으로 믿는 분, 깜냥임을 인정 받으려 이벤트를 이어가는 분, 스스로 멍석을 깔고 다니는 분, 후보로 나서는 것을 평생직업으로 삼는 분, 누군가 모시러 오리라 믿고 있는 분, 다음 기회를 염두에 두고 '이번에 안 되면 그만'이라고 설치는 분 등 다양하기도 하다. 선거 직전 출현하는 종파 지도자나 가문의 대표들은 지금은 잊자.

혹 '25+α'는 아니 되려나. α가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연휴 기간에도 가족ㆍ친지 간에 회자되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한 α'로 잠복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추석 소반의 으뜸 안주는 단연 '노무현의 말말말'이었다. 이번엔 "대선에 누가 나올까?" "누가 돼야 살맛이 날까?"일 게 분명하다.

청컨대 '25+α'에서 정운찬과 박원순 이름은 빼 놓으라. 정 교수와 박 변호사는 국민을 살맛 나게 해주는 일이 따로 있으며, 무엇보다 결코 '나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난 주 서울대 동문 간담회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 대통령 감이 못 된다. 거론하지 말고, 여론조사에서도 빼 달라"고 통사정했다. 기자들이 '진심은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4차례나 우회하고 돌려가며 의중을 염탐했으나 대답은 똑같았다.

질문 등쌀에 못 이겨 "바람직한 차기 지도자는 기초가 튼튼하고, 겸손하고, 남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자신 얘기냐'는 의혹에 "정치만 아니라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일반적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대열로 인식되는 것조차 단호히 거부한 셈이다.

경제학 교수로서, 서울대 총장으로서 그의 언행을 신뢰하기에 "감이 아니다"는 고백도 100% 믿는다. 훌륭했던 총장, 유능한 교수도 우리 사회에선 꼭 필요하다. 강의실에 몰려온 학생들로부터 그를 빼앗아 가선 안 된다. 그랬다가 학생과 국민은 물론 당사자나 정치권도 잃은 것 뿐이었던 과거가 적지 않다.

박 변호사도 하는 일을 계속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은 정치인들이 일궈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 들어 중요한 자리가 빌 때면 번번이 그에게 손길이 뻗쳐왔다.

하지만 "지금 일이 더 중요하다. 더구나 이 일을 내가 더 좋아한다"는 게 한결같은 말이었다. 초임 변호사 시절 관심이 적었던 지적 재산권 문제를 연구했고, 허름한 사무실에서 시민운동(참여연대)을 개척하느라 변호사 수입도 버렸다.

영국 등에서 모은 각종 자료를 책가방 가득 메고 다니기를 2년 여, 모두가 회의적이었던 아름다운재단을 성공시켰다. 그는 현재 지구촌사회공동체를 위한 새 일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보다 장래에, 국가보다 인간공동체에 관심이 크다. 그래서 스스로 "감이 아니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가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자 정치권이 다시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 상은 대통령(필리핀)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지만 수상자들 대부분은 정치인과 거리가 있다.

●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

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를 채택해 대선 후보를 국민적 인기투표로 뽑으려 들면서 정 교수와 박 변호사를'히든카드'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론만 되더라도 이익이라는 정치적 타산이 있는 듯하다.

그러지 말라. 두 사람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국민들을 살맛 나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정치인이거나, 정치인이 되려는 분 가운데서 뽑아야 한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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