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견우와 이별한 후에/슬픔에 겨워 벽공(壁空)에 던졌다오’ 16세기, 조선의 명기이자 문인이었던 황진이가 읊었다는 이 시조에는 허공에 걸린 반달을 보며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정한(情恨)이 스며있다.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난 지금, 황진이가 다시 태어나 휘영청 한가위 보름달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 보름달을 보는 황진이는 도대체 어떤 모습의 여인일까.
KBS가 11일부터 2TV를 통해 방영할 24부작 드라마 ‘황진이’(극본 윤선주, 연출 김철규)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하지원(28). 그가 드라마를 통해 그려보일 황진이는 조선시대의 남녀차별, 신분차별에 순응하지 않고 예술적 열정과 자유로운 사랑을 갈구한 종합 예술인이다. “솔직히 드라마를 선택하기 전까지 황진이를 기생 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어요. 드라마 제의를 받고 자료를 찾아보니 황진이가 춤꾼이자 시인이며, 자유로운 예술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멋진 여성을 그린다는데 연기자로서 욕심나는 게 당연하죠.”
그런 황진이의 예술과 삶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그는 드라마 촬영 전부터 하루 5시간씩 전통 춤과 악기를 배웠는데, 춤을 추다가 한 쪽 다리가 마비되기도 했다. 황진이의 기예(技藝)를 선보이기 위해 검무, 장구춤 외에도 거문고, 가야금 등 악기 연주까지 익혔는데, 촬영이 없는 날 연습을 하려고 아예 거문고를 집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하지원의 열정과 새로운 역할에 대한 도전은 일견 황진이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드라마 ‘다모’와 영화 ‘형사’에서의 와이어 액션, 영화 ‘1번가의 기적’의 여자 복서 등, 여배우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역할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감에 넘치는 그에게 딴죽을 걸어 보았다. 포스터의 황진이가 예술인의 기품보다는 기생의 요염함만 강조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너무 요염하다구요? 포스터는 황진이가 자신을 능멸했던 남자들을 도도하게 내려다 보는 설정으로 찍은 것인데…”라고 반문한다.
‘황진이’는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 중이다. 영화에서는 송혜교가 캐스팅돼 하지원과 매력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황진이로서 대중에게 먼저 공개되는 부담감은 없을까.
“‘다모’와 ‘형사’를 찍어보니 원작이 같아도 드라마와 영화의 느낌은 달랐어요. 영화도 매력이 있겠지만 드라마는 24부작이니까 황진이의 인간적 갈등과 고통을 더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담하고 조신한 외모와 달리 느긋하게 말하는 배포가 남자 못지 않다. 그 모습이 시대의 벽을 뛰어넘으려 한 황진이와 겹쳐 보일 만큼. “엄마가 점을 보셨는데 제가 남자 사주를 타고 나서 남자로 태어났어도 성공했을 거라고 하더래요. 황진이도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더 대단한 인물이 되었을 테니까, 황진이도 저와 비슷한 건가요?”(웃음)
2000년 영화 ‘진실게임’에서 인기 가수에게 집착하는 여고생 역으로 데뷔해 영화 ‘가위’(2000) ‘폰’(2002)을 통해 호러 퀸에 등극했던 하지원은 이후 드라마 ‘다모’(2003)와 ‘발리에서 생긴 일’(2004)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드라마 ‘황진이’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 부을 기세다. 황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면서….
“악기 연주와 춤을 대역 없이 하려고 해요. 춤도 어깨만 들썩이지 않고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동작을 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황진이의 겉모습만이 아닌, 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인생과 고통까지 보여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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