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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방송의회'를 구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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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방송의회'를 구성하자

입력
2006.10.0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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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을 전후로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20년간 계속돼 왔다. 처음 10년간 공영방송 노조는 일일이 세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파업을 했다. 많은 노조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개혁ㆍ진보 세력은 방송노조의 투쟁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다음 10년은 모든 게 뒤집어졌다. 그간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기던 지식인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공정성 문제에 대해 입을 닫았다. 자기들이 원하는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공정성은 보수파의 신앙이 되었다.

● 정략게임이 된 공정성 시비

만약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될까? 공정성 문제에 입 닫고 살던 사람들은 계속 입을 닫을까? 공정성을 외치던 보수파는 계속 공정성을 외칠까?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그건 당파성인가? 내 맘에 들면 모른 척 하고 내 맘에 안 들면 문제 삼아야 하는 그런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공정성을 둘러싼 이 얄팍한 정략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나부터 반성하겠다.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이 문제에 정직하게 대응하면 좋겠다.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완전 독립시키는 대원칙에 합의하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공정성 갈등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은 지금이 딱 좋은 시기다. 한 세대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절호의 기회다. 여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으면 여당이 목숨 걸고 반대하겠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다. 야당은 집권 가능성이 높다 해도 내심 불안에 떨고 있는 만큼 내년 대선에서 방송 공정성을 확실하게 이뤄낼 수 있는 방안을 결사 반대할 처지는 아니다.

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자. 가칭 '방송의회'를 구성하자. 방송위원회 위원과 공영방송사 사장에 대한 인사권을 방송의회에 넘겨주자. 행여 돈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를 구성하는 방송의원은 교통비조차 받지 않는 완전 무보수 명예직이다. 방송의원들은 방송위원회 위원 및 방송사 사장 등을 선출하는 투표권만 행사하면 된다. 선출 후 중대사안에 국한하여 결정을 내리는 추가 투표도 있을 수 있겠다.

방송의원 규모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고 외부 압력과 로비를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끔 수천명으로 하자. 선출은 완전 자유경쟁 공모제로 하자. 후보자들은 수천명의 방송의원 앞에서 자신의 비전과 소견을 역설해 본격적인 검증을 받도록 하자. 공정성 안전 장치도 그런 검증 과정을 통해 마련하도록 하자.

기존 시스템과 비교하여 방송의회에 문제가 없을 리 없다. 적잖은 부작용도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권의 정략적 갈라먹기 싸움에 늘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전락하곤 하는 공정성 갈등을 유발하는 기존 방식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선출만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일 뿐 방송이 국가체계상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게끔 하는 기존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가는 만큼 '독립'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송의회는 한국 시민사회의 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그 수준이 낮아 문제가 되는 건 감수하자. 지금 우리가 현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것이 한국사회 전반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 방송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길

방송의회 구성은 기존 법과 제도를 상당 부분 바꿔야 하는 일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 검토해보되 그 취지와 의미만큼은 지금 당장 받아 들이자. 방송계를 눈만 뜨면 싸움질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대리전쟁터로 만들거나 볼모로 잡아두는 건 우리 모두의 자학(自虐)이다.

다른 정부 유관기관들도 이런 인사 방식을 원용하자.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의 중립적 영역을 넓혀가지 않는 한 한국은 내부 당파 싸움에 역량을 소진시켜 주저앉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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