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출범한 지방의회가 8일로 100일을 맞는다. 유급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만큼 지방의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으나 아직도 구태가 여전하다. 의정활동은 제쳐놓고 해외여행부터 다녀오는가 하면 의원 개인사무실 확보와 처우개선 등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동네일꾼으로서 모범적인 활동을 보이는 의원들과 의회가 나타나 그나마 위안이 된다.
“4년간 해외연수비 앞당겨 쓰자”
대전서구의회 의장 등 의원 4명은 개원 한 달여 만인 8월 중순 사무국직원 3명을 동반하고 열흘간 러시아 덴마크 노르웨이 3개국을 다녀왔다. 의원의 연간 해외연수비는 180만원이지만 이들은 3년치 연수비를 앞당겨서 1인당 450만~420만원씩 예산을 타냈다. 더욱이 이들은 항공료를 국내항공사 기준으로 책정한 뒤 실제로는 절반 가격인 러시아 항공기를 이용하고 그 차액 50만~100만원씩을 유용했다. 이들은 귀국 후 이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자 항공료 차액 740여만원을 갹출해 의회에 반납했다.
경북도의원 14명은 24일부터 13박14일간 미국과 캐나다로 연수를 추진하고 있다. 비용은 무려 1인당 720만원에 달한다. 4년치 해외연수비를 한꺼번에 몽땅 쓰기로 한 것이다. 일정은 당초 백악관, 나이아가라폭포, 그랜드캐년 등 관광일색으로 잡았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뒤늦게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의회는 9월 임시회기가 끝나자마자 전체 의원 119명 중 75.6%인 90명이 일제히 동남아 호주 등으로 외유를 떠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관련상임위 배정 “로비 가능성”
의원수가 7명에 불과한 전남 무안군의회는 개원하기 무섭게 상임위원회를 3개씩 신설했다. 이에 따라 의원 전원이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상임위간사 등 한 자리씩을 차지했고 평의원은 1명도 없는 기형적인 꼴이 됐다. 의원수 13명 이하 소규모 의회는 상임위를 설치할 수 없었던 지방자치법 조항이 삭제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상임위원장에게는 매달 60만~80만원의 업무추진비가 지급되고 별도의 사무실이 배정된다. 자치단체는 상임위에 전문위원을 배치하는 등 인력과 예산을 추가 투입해야 하지만 그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서울시와 경기도를 제외하고 모든 시ㆍ도의회가 의원들의 직업과 관련된 상임위배정 제한을 조례로 제정하지 않고 있다.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가 경남도의원과 마산ㆍ창원시의회를 조사한 결과, 겸직 비율이 평균 56.8%로 높았고, 자신의 직업과 이해관계에 있는 상임위에 소속된 의원도 상당수에 달했다. 실제로 건축 입찰 비리가 끊이지 않는 도시관리위원회의 위원들은 대부분 건축관련사업자 등으로 채워져 있는 실정이다.
처우개선 요구는 끝이 없어
제주도의회는 개원을 앞두고 의원 5명당 사무실을 1개씩 배정키로 하고 2,900만원을 들여 의회 내부공사를 마쳤으나 의원들이 ‘1인 1실’을 요구, 다시 5,600만원을 들여 개조공사를 해야 했다. 부산시의회는 29억원을 들여 5층 규모의 의원회관 신축을 추진하다가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유보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의회 개원을 앞두고 50억원을 들여 별관 2동 7, 8층(연면적 1,381평)을 리모델링해 기존에 사무실이 있던 의장단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 92명에게 각각 8평 규모의 연구실을 제공하고 인턴직원 1명씩을 배치했다. 하지만 두 차례 임시회에서 의원들이 처리한 의안건수는 48건에 불과하다. 이것도 의원발의는 3건, 상임위원회 3건에 불과하고 시장이 제출한 조례안이 13건을 차지했다.
벌써부터 의정비 인상 요구도 나오고 있다. 서울서초구의회는 구에 의정비를 다시 책정하자고 요구해 눈총을 받고 있다. 구의회는 의정비 심의위원 1명의 사퇴 수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정비가 결정됐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초구의회의 의정비는 서울 25개 구의회 중 가장 낮은 연간 2,520만원이다.
“모범 보이자”일부선 개혁 운동
초선의원의 대거 진입으로 지방의회가 젊어지면서 모범적인 의회상을 보이는 곳도 적지 않다.
부산시의원들은 ‘늘푸른연구모임’ ‘서부산권발전협의회’ 등을 구성, 예산안 심의워크숍을 실시하고, 국회 법제실장, 지방재정학회장 등 전문가를 초청해 과외지도를 받고 있다. 전남 완도군의회, 충북 진천군의회, 음성군의회 등 일부 소규모 의회는 부작용을 우려해 상임위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10명 의원 중 9명이 초선인 경북 칠곡군의회는 올해 해외연수비 1,400만원을 반납, 주민숙원사업에 쓰기로 했다.
충남대 최진혁(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초선을 중심으로 과거보다 의욕적인 의정활동 자세가 엿보인다”며 “의원들이 4년간 초심을 지킬 수 있도록 시민들이 지속적인 감시와 자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