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래부 칼럼] 세종대왕께 사무치는 고마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래부 칼럼] 세종대왕께 사무치는 고마움

입력
2006.10.02 23:51
0 0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를 소재로 한 아름다운 단편소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소설은 알사스 지방이 무대다. 내일부터는 독일어만 배워야 한다. 이 날 따라 정장을 한 선생님은 어린 학생과 '마지막 수업'을 들으러 온 동네 어른 앞에서 말한다.

"프랑스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국어만 간직하고 있으면 자기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모국어 아름다움 되새긴 올해

헨리크 센케비치의 '등대지기'도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다룬 빼어난 단편이다. '쿼바디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지만, 이 작품은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 조국을 떠나 40여 년 동안 방랑하던 스칸빈스키 노인은 파나마 고도의 등대지기가 된다. 찾아올 사람도, 찾을 사람도 없이, 식량은 한 달에 두어 번 보급선이 실어다 준다.

어느 날 그에게 소포가 배달된다. 폴란드어로 된 몇 권의 책이다. 적지만 쓸 일도 없는 월급을 모아 미국의 폴란드협회에 기부한 적이 있는데, 책이 답례로 온 것이다.

오래도록 잊어버렸던 모국어를 읽는 동안 노인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움과 서러움 속에, 책에서 어릴 적 친구와 고향의 소리가 들려온다. 노인은 책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황홀에 잠긴다. 등대를 밝히지 않은 채 하룻밤이 지났다. 그러나 등대 불을 켜지 않은 탓에 그는 해고된다. 노인은 또 다시 방랑 길에 올랐으나, 가슴에는 폴란드어 시집을 꼭 껴안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적이 있는 국가와 민족은 모국어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프랑스 폴란드 등과 함께 우리가 그러했다. 대표적 예가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우리 말과 글을 연구ㆍ보급하던 조선어학회는 일제에 의해 16명이 기소되어 두 명이 옥사하는 등 참극을 겪었다. 애국적 지식인이 펼친 한글운동은 광복운동이자 민족운동이었다.

올부터는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로 승격되었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져 '저축의 날' '물의 날' 등처럼 기념일로 격하된 지 16년 만이다. 우리는 한글날을 이렇게 홀대했지만, 프랑스에는 '프랑스어 사랑 주간'도 있다. 우리가 하루를 기념한다면 프랑스인은 1주일을 이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고 자랑하던 자부심의 표시일 것이다. 굳이 프랑스어와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일한 글자인 한글로서는 진작 국경일로 대접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이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대한 사무치는 고마움이다. 우리 후손은 한글의 향기롭고 풍부한 자양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성은 민주주의와 함께 입증되었고, 컴퓨터 시대를 맞아 미래지향성이 점점 더 찬란해지고 있다. 세종은 태평성대를 이끈 성군인 동시에, 정치와 외교 음악 문학 과학 국방 교육 등 거의 전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세종을 기리기 위한 세종로와 세종문화회관, 세종대학, 세종호텔까지 있지만, 작게 흩어져 있어 큰 모습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다행히 올해 세종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사업들이 발표되었다. '세종광장'이 조성되고 덕수궁에 있는 세종 동상도 이 광장으로 옮길 예정이다. 예전 '세종국제공항' 계획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변경된 사실과 비교하면 진전이 있는 셈이다.

● 한글에 담긴 민족의 미래

우리에게 한글이 있고 세종 같은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경이이자 축복이다. 세계화로 인한 언어적 혼탁 속에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면면히 지키고 가꿔가는 일이 소중하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격상되고 세종 기념사업에 다시 눈을 뜨게 된 올해가 자랑스럽다. 프랑스어가 감옥의 열쇠로 비유되었듯이, 한글에도 민족의 빛나는 미래가 약속돼 있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