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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계천 역사·생태 복원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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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계천 역사·생태 복원이 과제다

입력
2006.10.0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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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일, 청계천의 준공이 선포되었다. 2003년 7월 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작업이 시작되고 26개월만에 '청계천 복원사업'이 예정대로 끝났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청계천에는 1,000만명을 훌쩍 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청계천'인가.

● 사라져버린 하천의 역사

본래 청계천은 인왕산 자락에서 시작되어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자연하천이었다. 이것을 조선 태조 때부터 개수해서 조선의 왕도인 서울의 하수구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조 때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석축사업을 벌여서 청계천의 안쪽에 석축을 쌓았고, 둑 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어서 서울은 아름다운 '유경(柳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계천 개수사업은 종묘사직, 한양도성, 경복궁과 함께 태조가 추진한 한양의 4대 토목사업에 속했다. 그 사업은 태종과 세종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특히 영조 때 쌓은 석축은 조선의 토목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희귀한 하천 토목문화재였다. 이 석축은 일제 때 청계천 복개사업이 시작되면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다시 박정희 때 복개사업이 재개되면서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을 한다며 복개구조물을 걷어내고 보니 그 아래에는 500m가 넘는 석축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모조리 걷어 없앴다. 몇번이나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수표교나 광교도 복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교 유구는 600년 동안 지켜왔던 제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일제시대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며 크게 훼손되고 파괴된 청계천의 모습을 가능한 한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어야 했다. 청계천은 경복궁과 비슷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역사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어렵게 남아 있던 청계천의 역사마저 모두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대신 청계천 자리에는 국적 불명의 현대식 수변공간이 들어서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것을 청계천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이것을 '명박천'이라고 불러야 한다.

● 주변지역 난개발도 막아야

사실 복원된 청계천은 하천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전기모터를 돌려서 한강물을 거꾸로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마련한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한 외국의 전문가도 새로운 청계천은 하천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분수'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고기며 새들이 찾아든다고 해서 이런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멘트 수족관에서도 물고기와 새들은 살 수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신개발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청계천의 복원은 미래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난개발도 막아야 한다. 주변에 4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게 돼 청계천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울 도심이 대대적으로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 청계천과 주변 지역이 진정으로 되살아나는 날을 고대한다.

홍성태ㆍ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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