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지금 ‘권력 이동’이 한창이다. ‘파워 엔진’ 박지성(25ㆍ맨유)에서 ‘스나이퍼’ 설기현(27ㆍ레딩)으로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2일 새벽에 열린 웨스트햄과의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경기서 전반 2분만에 ‘벼락 선제골’을 기록한 설기현은 막바로 ESPN사커넷이 뽑은 주간 베스트11에 올랐다. BBC와 스카이스포츠에 이어 3대 매체에서 주간 베스트11에 오른 ‘천하 통일’이다. 박지성의 데뷔 초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다.
●기록으로는 설기현이 추월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해인 설기현은 기록으로 박지성의 지난해 활약을 넘어섰다. 7경기에서 2골 2도움. 경기당 0.29골의 골결정력이다. 산술적으로 3경기에 1골씩 성공시킨다는 얘기다. 골과 어시스트를 합한 공격포인트에서도 경기당 0.57로 2경기에 한번 꼴이다.
반면 박지성은 1골 6어시스트(33경기 출전)로 지난 시즌을 마감했다. 득점률은 0.03이고 공격포인트는 0.21에 그쳤다. 설기현이 프리미어리그 선수랭킹 19위까지 오른 반면 박지성은 아직까지 한번도 100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데뷔 42일만에 설기현은 박지성의 1년을 넘어선 셈이다. 물론 이 같은 통계는 박지성의 맨유에 비해 ‘상대적 약체’인 레딩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공격 기회가 설기현에 더 집중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설기현의 주가가 치솟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포지션 플레이에 대한 평가는?
이들이 모두 측면에서 활약한다는 점에서 설기현과 박지성은 유사 포지션이다. 설기현은 4-4-2 포메이션의 오른쪽 미드필더로, 박지성은 4-3-3의 왼쪽 날개로 뛰고 있다. 측면 공격자원의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는 크로스 성공률에서 설기현이 비교 우위를 보인다.
설기현은 7경기만에 19개의 크로스를 성공시켜 이미 박지성이 지난 시즌 기록한 17개를 넘어섰다. 설기현은 크로스 성공률에 있어 현재 프리미어리그 전체 1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수비 가담 능력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박지성이 지치지 않는 활동량을 보이며 수비진 깊숙한 곳까지 가담하는 것처럼 설기현 역시 측면 미드필더로서 수비 가담이 매우 활발하다.
●엇갈린 희비
지난달 이란-대만으로 이어진 두차례의 A매치에서 설기현과 박지성의 ‘간접 대결’이 펼쳐졌다. 결과는 설기현의 완승. 설기현은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펄펄 난 반면 박지성은 부진한 모습을 보여 대만전에는 후반 9분 교체 아웃되기까지 했다. 설기현과 박지성의 뒤바뀐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독일월드컵을 전후해서 중심축은 엄연히 박지성이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 박지성은 피로 누적에 의한 부상으로 힘겨운 시기를 맞았고 설기현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소속사 문제에서도 희비는 갈렸다. 박지성은 무명 시절부터 9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FS코퍼레이션스와 결별하면서 송사에 휘말렸고 설기현은 절친한 동료 이영표를 빅리그로 진출시킨 ㈜지쎈으로 둥지를 틀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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