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는 기척 끝에 "미스 황!" 소리가 밝다. 문을 여니 전 집주인 아주머니가 상자를 내미신다. 그이 가족은 여전히 이 집의 맨 아래층에 산다. 거기 작업장을 차리고 하청 받아 옷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집을 비우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집 전화번호를 아예 내 배달물 연락처로 써왔다.
"귀찮으시죠? 뭐가 자꾸 와서 죄송해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아니에요. 얼마나 좋아요, 선물이 많이 오니" 하신다. 그건 오해다. 내게로 오는 택배는 대개 내가 홈쇼핑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한 상품이다. 이번 건 선물이지만. 추석이라고 친구가 보낸 것이다.
명절 즈음엔 거리에 택배 차량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그 중,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흐뭇한 선물이 얼마나 될까? 내 동생이 회사 자재과에 있었을 때, 명절이면 많은 선물이 그 집에 들어왔다. 덕분에 나도 몇 장의 상품권과 비싼 물건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다 다른 과로 발령이 난 뒤 첫 명절, 동생이 약간 쓸쓸해 보였다.
박탈감이랄까, '선물' 금단현상을 저도 어쩔 수 없는가 보았다. 너희 회사보다 작은 거래처에서 보낸 선물이었을 텐데 그런 걸 받는 게 떳떳한 일은 아니었다, 위로했지만.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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