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을 갈구, 무리 3,000을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이 분이 환웅 천황이다. 천황은 풍백ㆍ우사ㆍ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인간이 된 곰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단군 왕검이다.> 단군신화의 이 간단한 줄거리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근거다. 옛날에>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제왕운기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 있다. 다만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단군을 낳게 했다'고 적어 환웅을 단군의 아버지가 아닌 외증조부로 보았다.
■ 사소한 차이 같지만 뚜렷한 시각 차이가 엿보인다. 단군신화처럼 천손강림설화는 일반적으로 외래집단과 토착집단의 정치통합 과정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삼국유사가 그린 정치통합은 개념 필수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는 외래집단의 주도권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인간 이하로 여기던 토착집단을 인간으로 끌어올려 결합한다. 반면 제왕운기는 토착집단의 대표에게 단수신이라는 신격을 부여하는 것도 모자라 환웅의 손녀를 인간으로 끌어내리고 결합시킨다. 이처럼 제왕운기의 단군신화에는 토착집단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 단군신화가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의 원천으로 여겨져 온 것은 '단군의 자손'을 천제와 직결시켰기 때문이다. 부계 중심의 혈통의식을 생각하면 왜 제왕운기보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가 인기를 누렸는지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단군신화는 이미 환웅과 단군 시절에 통치와 교화의 대상인 '인간 세상'을 상정했다. 따라서 우리 대부분은 '단군의 자손'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조선의 건국 설화인 '용비어천가'는 물론 고구려ㆍ백제ㆍ신라ㆍ가야의 건국설화에서 핏줄 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어쩌면 우리의 뿌리 의식은 부계 중심의 성씨에 사로잡혀 있다. 또 세상이 다 아는 가까운 조상보다 누구도 선뜻 부인하지 못할 먼 조상에 기대려는 심리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뿌리 의식은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즉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긍심에 달린 것이지 조상의 잘나고 못남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생하며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 그 부모님을 낳고 길러 준 조부모와 외조부모…. 부자였든 가난했든, 양반이었든 머슴이었든, 그런 분들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노력을 다짐하는 것. 개천절과 한가위가 나란히 찾아온 기회에 그런 뿌리 의식을 찾을 수 있기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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