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30ㆍ요미우리ㆍ홈런 40개)은 마음을 많이 비운 모습이었다.
라이벌 타이론 우즈(주니치ㆍ홈런 41개)에게 추월 당해 일본 프로야구 첫 홈런왕 등극이 막판 안개 속에 휩싸였지만 “개인 타이틀은 보너스의 의미일 뿐”이라며 우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승엽은 “내년 일본에 남는다면 그 팀은 요미우리다. 빌딩을 사준다고 해도 다른 팀은 싫다”며 요미우리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도쿄 돔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홈 경기에 앞서 이승엽을 만나 올시즌을 돌아보며 주변 얘기들을 들어봤다.
- 왼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솔직히 팬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안 좋다. 하루라도 얼음찜질을 하지 않으면 퉁퉁 부어 오른다. 오른 무릎도 별로 좋지 않아 시즌 후가 걱정이다.”
- 한국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우즈에게 홈런 1위 자리를 내줬는데.
“우즈는 정말 뛰어난 타자다. 개인적으로는 올시즌 홈런, 타율, 타점 세 부문에서 목표를 다 이뤘기 때문에 우즈가 홈런왕이 된다고 하더라도 막판 역전을 당했던 지난 98년처럼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은 뒤 큰 성공을 했다.
“정말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나를 믿고 개막전부터 4번 타자로 내보내준 하라 다쓰노리 감독에게 감사한다. 정말 야구 선수로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지바 롯데에 있었다면 이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 요미우리 팀에 대한 인상은.
“지바 롯데는 아주 자유스런 분위기였던 반면 요미우리는 격이 있는 팀이다. 프라이드도 무척 강하다. 복장, 두발 등 외모 면에서의 규율도 무척 까다롭지만 나한테는 잘 맞는 팀이다.”
- 일본 프로야구 3년 만에 성공을 거둔 원동력은.
“물론 지난 2년간 뛰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일본에서도 늘 곁에 좋은 지도자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김성근 감독님(지바 롯데 코치)이 정말 큰 힘이 됐고, 올해는 하라 감독, 우치다 타격 코치 등이 내게는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사실 개막 직전에 열렸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도 불안감이 컸다. 시즌 들어 이 같은 불안감이 사라진 데는 감독과 코치 등 코칭스태프의 역할이 컸다.”
- 기술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역시 변화구에 대한 대응력이다. 비교적 구질이 단순한 한국프로야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다양한 투수를 상대로 노려 치기를 할 수 없다면 절대로 일본에서 성공할 수 없다. 96년 삼성 시절 백인천 감독님이 ‘노려 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많이 강조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 올시즌 기록을 분석해 보면 지바 롯데 시절인 지난 2년과는 달리 초구 공략이 많을 정도로 공격적이었는데.
“퍼시픽리그의 경우에는 투수들이 초구에 볼을 많이 던졌다. 하지만 센트럴리그는 다르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 보내면 금방 볼카운트에서 몰리기 때문에 어려운 승부가 된다. ”
- 공격 각 부문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올렸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타점이다. 주자가 득점권에 진루하면 좀처럼 좋은 공이 들어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반드시 내가 해결하겠다는 욕심이 앞선 던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수비다. 어이없는 실책도 있었는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 오랜만에 풀타임을 소화했는데,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 팀이 시즌 초반 잘 나가다 주전들의 잇단 부상 등으로 급격히 추락하면서 4번 타자로서 부담감도 컸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 시즌 초반부터 내 개인 성적이 좀 떨어지더라도 팀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올시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요미우리가 조만간 꼭 우승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은?
“도쿄 돔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개막전 홈런이다. 당시 내 스스로도 불안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지만 결과가 너무 좋았다. 정말 긴장을 많이 했었다.”
- 내년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 ”
- 만일 일본에 남는다면 무조건 요미우리인가.
“당연하다. 빌딩을 사준다고 하더라도 다른 팀은 가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계속 뛴다면 요미우리가 마지막 팀이 될 것이다.”
- 일본이나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끝낸 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뛸 계획은 있는가.
“물론 뛰고 싶다. 단 한 경기라도 고국의 팬들 앞에서 뛴 뒤 유니폼을 벗고 싶다. 나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국내 팀에서 현역 마지막 무대를 꾸미겠다. 현재로서는 그 팀이 꼭 삼성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도쿄=양정석통신원 jsyang061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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