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쟁이다. 내달 10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료를 내놓으라"는 국회와 "못 준다"는 정부의 기 싸움이 가관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K 의원의 보좌관은 몇 주째 요청한 자료를 주지 않는 통일부 공무원을 의원회관으로 불러 작정하고 호통을 쳤다. 하지만 "관련 법을 다 찾아보니 정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해도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느냐"고 오히려 불만을 터트리고 돌아갔다.
국회 재경위 L 의원의 보좌관은 최근 얼굴도 잘 모르는 고교 선배 동문의 전화를 받았다. 모 지방국세청에서 일한다는 이 선배는 "얼마 전 그 쪽에서 요구한 국감 자료는 너무 민감하니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며 반(半) 협박을 했다.
피감 기관의 자료 제출 거부 구태가 도를 넘었다. 국회 관계자들은 "국무조정실이 올 초 각 부처에 하달한 '국정감사 매뉴얼'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사소한 자료라도 '실무자_실ㆍ국장_국감 자료 검토위원회_차관'의 4단계 결재 절차를 거쳐야 국회에 제출할 지 여부가 결정된다.
때문에 재경위 L 의원은 5년 전 언론사 세무조사 때 국세청이 낸 보도자료 한 장을 2 주째 받지 못하고 있다. 문광위 J 의원은 글자보다 '000'이나 'XXX' 같은 표시가 더 많아 알아 보기도 힘든 인사 자료를 받았다.
급기야 야 4당 정책위의장들이 최근 "국회의 행정부 견제 권한이 침해되고 있다"며 "끝까지 자료 제출을 거부한 부처 장관을 사법기관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피감 기관도 할 말이 많다. "20년 치 통계를 다 찾아 내라"는 식의 황당한 자료 요구 때문에 일상적 부처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 공개'를 기치로 내건 참여정부가 국감 자료 제출 막기에 급급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부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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