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유안 글ㆍ홍선주 그림 / 창비 발행ㆍ8,500원
요즘 아이들은 현실적이다. 열 두서너 살쯤 되면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도 한두 번쯤 이혼의 위기를 겪는다고 이의를 제기할 만큼 동화 이야기를 냉철하게 받아들인다. 다음달 9일은 560돌 한글날.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독창성, 실용성, 과학성 등 한글의 위대한 가치를 설명하려 했다간 “그래서 뭐?”라는 냉랭한 반응만 돌아올지 모른다. 이럴 땐 ‘한글창제 후 세종대왕은 왜 근심에 빠졌을까?’라는 문제를 던져주는 것도 좋겠다.
‘초정리 편지’는 일반 백성들에 한글이 보급되는 과정을 그린 역사동화다. 눈병이 심해진 세종대왕은 충북 초정리의 한 시골마을로 요양을 갔다가 산에 나무 하러 온 소년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다. 임금인 줄 모르고 열심히 새 글을 익히는 장운이. “글자라는게 어려운게 아니네요.” 장운이는 뻗치고, 둥글리고, 점 찍어 만드는 새 글을 누이 덕이, 친구 난이, 양반 윤초시댁 부인, 함께 일하는 석공들에게 두루두루 알린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배울 수 있고 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새 글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석공 동료 상수만은 이런 장운이를 비웃는다. “글자라는 게 한자처럼 점잖고 어려워야지, 아무나 다 쓰면 그게 무슨 글자냐. 양반들은 그런 거 안 써.” 그런 상수도 난이가 적어준 구급약 처방전 덕에 몸에 난 상처가 낫자 마음을 연다.
교사 출신인 작가는 한글 반포 과정과 석공의 꿈을 이뤄가는 장운이의 성장통을 오밀조밀 감동적으로 그렸다. ‘제10회 좋은 어린이책’창작부문 대상 수상작. “한글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담은, 역사의식과 재미가 어우러진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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