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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도언 두번째 소설집 '악취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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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도언 두번째 소설집 '악취미들'

입력
2006.09.2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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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고도 불온하다. 잔혹하고도 잔혹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편편의 마지막 마침표에 도달할 때마다 껍질을 벗겨낸 곤충의 체액처럼 진득진득한 슬픔이 남는다.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의 문제를 천착해온 소설가 김도언(34)씨가 두 번째 소설집 ‘악취미들’(문학동네ㆍ9,500원)을 펴냈다. 2004년부터 2년간 ‘악취미들’이라는 부제와 함께 일련번호를 매겨 문예지에 발표했던 10편의 작품을 역순으로 묶은 책이다. 목차를 보자. ‘권태’, ‘고통’, ‘나쁜 교육’, ‘잔혹’, ‘톱스타 살인사건 전말기’…. 가히 ‘악취미’라고 일컬어 한 치도 모자람이 없는 주제어들로 그득하다.

인물들은 더없이 두렵다. 단정하고 순정한 시를 썼던 요절 천재시인은 불륜에 빠져 혼음과 새도마조히즘을 일삼는 변태 성애자였고, 그의 형은 동생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인 제수에게 참을 수 없는 성욕을 느낀다.(‘권태-악취미들 10’) 아버지가 세살배기 남자아이를 성추행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시인 지망생은 군대에서 사령관에게 처참하게 성폭행 당하고, 10년 후 지방 소도시의 시장 후보로 나선 사령관을 증오와 사모의 혼융된 감정 속에서 총살하려 한다.

(‘B시 오후, 비 오고 흐림-악취미들 9’) 어렵게 얻은 딸을 자신의 운전 실수로 잃은 택시운전사의 아내는 남편의 ‘슬픈 택시’ 뒷자리에 앉아 승객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자신을 학대하고(‘택시 드라이버-악취미들8’), 반강제로 고양이와의 유사 수간을 강요당한 스무살 아가씨는 의붓오빠와 살을 섞으며 어머니와 외삼촌의 근친상간을 대를 이어 반복한다.(‘지붕 위의 날들-악취미들4’)

‘악취미들’은 그러나 이 같은 소재의 파격으로 독자들의 놀라움을 유도하는 책은 아니다. 상식과 금기의 위반은 언제나 있어왔고, 엽기와 이상병리는 문학과 예술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작가의 설득의 솜씨다. 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천연덕스러운 묘사와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음울한 소년의 속삭임 같은 낮고 축축한 어조와 시적인 리듬, 결코 흥분하는 법이 없는 반어와 냉소, 자기풍자…. 작가는 이 모든 미덕을 총동원해 이 ‘삿된 소재’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사정을 은밀히 토로한다. 삶은 병이고, 인간은 병원균의 숙주이며, 인간의 악취미는 그들의 병적 징후라는 것.

위악과 냉소, 폭력과 분열의 딱지를 벗겨내고 상처의 기원을 찾아내는 ‘잔혹-악취미들3’은 소설집 전체의 주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젊고 아름다운 20대의 여성이 애완견을 자동차로 깔아뭉갠 후 그 사진을 찍어 사진 전시회에 내걸거나, 기르던 고양이를 잔인하게 찢어죽이는 이유는 그녀의 육체에 새겨진 흉측한 화상 때문이다. “저는 이 흉터까지도 안아줄 수 있는 남자를 원했어요. 이 흉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요.

그러나 그런 남자는 하나도 없었어요. 남자들의 사랑 고백을 받을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애완동물을 하나씩 샀어요. 그 사랑이 영원하길 빌면서 애완동물을 키웠지요. 그, 그러나 남자들은 사랑의 약속을 버리고 떠나갔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키우던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고는 했어요.”(251쪽)

까닭 없이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리며 피투성이의 부서진 육체에 쾌감을 느끼는 그녀의 잔혹한 취미는 결국 인생은 질병이며, 세계는 병원이고, 우리 모두는 병자에 다름 아님을 보여주는 아픈 알레고리다. 랭보의 시구마따나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변태적이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변태성으로, 외설적이되 기묘하게 관능적인 외설성으로 종내 읽는 이를 쓸쓸하게 만드는 이 슬픈 잔혹극은 이야기의 힘과 문장의 아름다움으로 읽는 이를 떨리게 한다. 기필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보고 싶도록 만든다. 작가의 ‘악취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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