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손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한제국 황족회’가 29일 의친왕(1877~1955)의 둘째 딸 이해원(李海瑗ㆍ88) 옹주를 제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하고 서울 힐튼호텔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일제가 짓밟은 황실을 재건, 보존하기 위해 황실 후손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황족회는 지난해 7월 29대 황위 계승자인 이 구(李 玖)씨가 타계한 것을 계기로 올해 5월 5일 결성된 가족회다.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과 당호(堂號)를 받은 4명의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후손이 주축이 돼 결성했으며, 회원은 황족 10여명 등 80여명이다. 황족회는 대한제국의 존재를 알리고 조선과 대한제국의 문화적 계승을 표방하면서 결성 직후부터 황실의 대통을 잇기 위한 황위 계승 작업을 진행해왔다.
30대 황위 계승자로 추대된 해원 옹주는 황실의 법통을 잇는 것은 물론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 보존 및 복원 사업권, 차기 황위 계승 후계자 지명권 등을 갖는다고 황족회측은 밝혔다.
해원 옹주는 독립운동단체 대표, 문중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계승식이 끝난 뒤 “황실 가족의 최연장자로서 몰락한 황실을 세우는 밀알, 구심점이 되겠다”며 “대한제국 황실의 법통 승계자로서 황실 복원과 유지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원 옹주는 일제의 대한제국 황실 탄압을 곁에서 지켜본 산 증인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기억력이 비상해 옛 황실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다. 4남매를 둔 해원 옹주는 현재 공사장에서 노동 일을 하는 둘째 아들과 함께 경기 하남시의 4평짜리 무허가 단칸 월셋방에서 어려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의친왕은 13남 9녀의 자식을 두었으나 대부분 사망했으며 소수의 생존자도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는 등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의친왕은 1919년 독립운동을 배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왕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의화군으로 봉해지기도 했으며, 상해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중국으로 향하다 밀정에게 발각돼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황족회 관계자는 “해원 옹주는 의친왕가의 생존 자녀 가운데 가장 서열이 높은 어른이기 때문에 황실 법도에 따라 황위를 승계한 것”이라며 “여성이 황위를 잇는 것은 황실 법통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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